못다한 이야기/오늘도 하루를 산다

드디어 그토록 길고 길었던 2달 반의 에듀콘 생활이 끝났다.

지인:) 2019. 9. 22. 02:11

2019년 7월 9일부터 9월 20일까지..
에듀콘에서 11주간 총 350시간의 해외비즈니스 영어 건설 및 수주협상과정의 대단원의 막이 엊그제 드디어 끝났다.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술자리를 가지고.. 어제는 하루종일 고시원에서 잠만 잤다..

2달반 전, 처음 서울, 양재에 왔을 때의 그 막막함, 나 빼고 다들 양복입으며 돌아다니는 회사원들.. 어디까지 나열되어 있는지 끝이 안보이는 고층빌딩 등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다시금 새록새록 나고야 만다.

30 평생 대전에만 살아온 내게, 무언가 학위를 위한 것도 아니고 순전히 내가 원하던 외국어 공부를 위해서 매달 40만원씩 고시원 비를 내가면서 공부를 한다는건 새로운 도전이었다.

9 to 5로 영어공부와 비즈니스 공부를 했던 나날들..
이미 카이스트 어학센터에서 프리젠테이션 과정을 수강하긴 했었지만..
에듀콘에서 발표하기 위해 일일히 영어로 된 피피티를 30장씩 만들어가며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고심하고 발표했던 일..
사람들과 으쌰으쌰하면서 Site Survey하고 영상을 만들었던 나날들..
영어 면접 준비하면서 좌절하지만 그래도 나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무언가 배워갔던 것들..

그리고 5시 이후에 추가 수업으로 NCS, 토익스피킹, PM과정을 더 들으며 느꼈던 고난... 역경...
그랬기에 거의 9시부터 8시까지 수업을 들었던 나날들..

매일 아침, 사람들 사이에서 낑겨서 죽을것만 같았던 서울 지하철을 편도 1시간씩 서서 다니면서..
도대체 이놈의 발목은 병원에서는 나아졌다고 하는데 왜 맨날 아프기만 한건지 괴로웠던 나날들..

내 방의 2/3밖에 안되는 고시원에서 온갖 벌레와 사투를 벌여야 했고, 막혀가는 세면대 때문에 짜증났던 나날들을 겪어야 했다..
정말 말도 안되지만 어느 날 고시원 주방에서 40대 후반의 아저씨한테 주말 점심 같이 먹자는 소리 듣고 무서워하며 고시원에서 밥 안해먹고 매일 저녁은 풀때기로 방 안에서 홀로 배를 채워야만 했던 나날들도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이 끝난 뒤, 사람들과 마신 술 한모금, 서로 으쌰으쌰 하자며 나눴던 다정한 위로들이 결국은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여기 있으면서 하루종일 영어를 쓸 수 있다는 점도 무척 좋았지만..
좋은 선생님들과 같은 반 학생들 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이토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받게 될줄은 몰랐다..
지난 두달 반동안 커리큘럼을 따라가느라 너무 벅차고 힘들었지만..
앞으로 인생을 계속 살면서도 ‘이렇게 많은 누군가로부터 사랑 받았다는 경험’을 했다는건 내 인생의 좋은 자양분이 될 것 같다.

회사를 나오며.. 약 2달 간은 꿈속에서도 회사 꿈을 꿨었고..
회사에서 내팽겨졌다는 느낌 때문에 회사를 증오하고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시기를 5개월간 겪었었다.
취업시장에서 좀 더 유능한 사람이 되고자 여러 자격증들을 1년 간 준비했는데 결국 내가 원했던 직업 근처에도 못갔을 때도 낙담했었고..
그런데 나의 고통을 다른 사람에 보여주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참 많은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항상 ‘착하게 살아라. 남에게 피해주면 안된다.’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왔던 내게, ‘내 감정이 어떤 것으로 인해 불편하다면 너무 참지 말고 표현해도 된다.’라는 조언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좋았던 것 같다.

지금은 확실히.. 예전보다는 회사에 대한 증오심이 많이 옅어졌다.
그건 아마 지난 2달 반동안 공부에 집중하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여러 추억을 쌓았기 때문이었겠지.

다양한 인생의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을 보며, 좋은 자극을 많이 받았다.
멀리서 보기에 부럽기만 한 사람들도... 저마다의 아픔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극복하고 살아가고..
자신의 약함을 감추지 않고 서로에게 공유하면서 더 강해지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새삼 감탄하기도, 놀랍기도 했다.

그리고 취업을 위해서 대학 4년동안 아싸로 살면서 학교-집만 반복하며 홀로 공부만 하던 내게, 회사생활이 아닌 다른 계기로 사람을 만나고 정을 나눴다는건 참 의미있는 나날들이었다.

그토록 힘들었던 열흘 간의 PM 추가수업을 듣고나서 사람들과 소소히 대화를 나눴던 수제 맥주집,
왜 영어실력이 이처럼 늘지 않을까 괴로워하며 들었던 토익스피킹 수업 후에.. 결국 대학 졸업 후에 7,8년만에 다시 도전한 토익스피킹에서 레벨7이 나와서 사람들을 얼싸안고 좋아했던 일..
그 놈의 발표 과제들 때문에 5시가 지나도 사람들과 교실에서 피피티 작업을 하다가.. 양재 한복판의 편의점 앞에서 소소하게 맥주 1캔씩 마시면서 1명씩 칭찬타임을 가졌던 일..
사람들과 목요일 밤에 강남역 근처에서 술먹으려 걸어가며 봤던 수많은 인파들..

5시에 수업이 끝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었던 에그드랍 샌드위치의 보슬보슬한 계란의 촉감..
에듀콘 근처의 바나프레소라는 카페에서 음료를 테이크아웃하면, 음료에 쓰여있던 오늘의 운세들..
저렴하지만 마치 혈관이 터질 것처럼 맛있었던 크라이 치즈버거..
짬뽕하나 시켜도 맛난 튀김빵을 주는 근처 중국집 등등..

에듀콘에서 다녔던 많은 것들이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으로 남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선생님들..
누구보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어떻게든 무언가 더 가르쳐주려고 했던 선생님들..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하면서 어떻게든 학생들이 앞으로 시행착오를 덜 겪고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선생님들이 있어서 좋았다.
그 선생님들의 긍정적인 모습들은 내게 많은 힘이 되기도 했다.

내 인생이라는 책에서, 31살의 9월달의 페이지가 이렇게 닫히고 있다.
나는 다시 취업을 준비해야 하고 여전히 내가 언제 취직을 할 수나 있을 지 암담한 현실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9월 하반기를 20일이나 날린 시점에서 다시 남은 공고라도 잡도록 발버둥을 해야겠지..
하지만 언젠가 지금을 생각하면 빙긋이 웃을 수 있는 추억이 생겼다는게 기쁘다.
지금 만난 사람들이 과연 나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 그건 나는 모른다.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시간은 사람 간의 관계성을 바꿔놓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의 거주지마저 바꿔놓기도 한다. 꼭 한국이 아니게 될 수도 있고..
하지만 과거의 좋은 추억은 그 자리에 남아서 한 사람의 좋은 자양분이 될거다.
아니, 오히려 좋은 추억일수록, 나중에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더 좋게 미화되어, 설령 내가 미래에 힘든 일을 겪는다 해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겠지.

이제 대전으로,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겠다.
퇴사했을 때 롱패딩을 입고 나왔었는데.. 어느덧 다시금 긴팔 옷을 꺼내입어야 하는 계절이 성큼 다가왔으므로...

지난 두달 반동안.. 참으로 즐거운 여행이었다.


P.S. 에듀콘 후기 3은 나중에 시간될 때 계속 작성하겠슴다..
근데 취준때문에 바쁘면 못 쓸 수도 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