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도라산역을 드디어 갔다.
회사원이던 2년 전부터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역이었다.
남한의 최북단에 있는 역.
그 도라산역 가는 패키지에 제3땅굴을 체험하는 패키지가 있었다.

제 3땅굴을 가면 첫 400m까지는 높이가 2m가 넘는 굴이 나온다.
그러다 북한군이 원래 파놓은 쌩 땅굴이 나온다.
말 그대로 날 것의 땅굴.

제 3땅굴은 남한까지 불과 400m를 남겨두고 우리나라 군대가 북한군이 한창 파고 있던 땅굴을 찾아냈다고 한다.
그래서 도라전망대 근처의 제3땅굴을 들어가면 처음 400m가량은 나중에 관광용으로 우리나라에서 뚫은거다.

어쨌든 남한에서 뚫은 굴을 지나면 그때부터는 북한군이 침략하려고 뚫었던 완전 쌩 땅굴이 나오는데..
높이가 130,140센티 가량의 울퉁불퉁한 땅굴이 나온다..
그 땅굴을 걸어가는 동안 허리를 도저히 펼 수가 없었다.
강제 노인 체험.. ㅠㅠ

그냥 요즘 취준을 하는건 마치 땅굴을 파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는 터널을 지나간다고 생각했는데..
터널은 이미 누가 뚫어놓은거고.. 어쨌든 희미하게나마 저 멀리 빛은 보인다. 맞은편이 뚫려있으니까.
하지만 땅굴은 다르다.
직접 곡괭이로 파야한다.
열심히 파서.. 내가 원하는 목적지가 아니면 다시 출구를 메꾸고 다시 열심히 파야 한다..
몇번 드디어 취업할 기회가 왔는데도 면접에서 떨어지거나 내가 원하던 직무가 아니라서 결국 거절을 했어야 해서 그런가.. 마음이 참 답답하기만 하다..

드디어 지상으로 나왔나? 싶은데 원하던 목적지가 아니라서 다시금 굴을 메꾸고 다른 곳을 판다.
희미하게나마 보였던 빛이 다시 사라진다.
그 사라지는 빛을 보면서 혹시라도 이게 마지막 기회였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내 뒷통수를 붙잡는다.

흔히들 말한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할수록 인생 역시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에 최선이라 생각해서 하나를 선택하면 그 뒤에 연속적으로 다른 선택을 해야만 한다.
처음에는 어떤 선택을 하든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은 그 차이를 더 벌려놓고야 만다.
하나를 선택하면 그 뒤엔 선택지가 점점 줄어드니까..
즉, 사람은 살면 살수록 확실해지는 것이 늘어나고 가능성이 줄어들고야 마는 것이다.

내가 하는 선택이, 지금도 옳고 앞으로도 옳았으면 좋겠다.
6년 열심히 일하고 내팽겨쳐진 후라서.. 그걸 어떻게든 개선해보려고 지금 뛰어다니고 있는데..
솔직히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일과 최대한 가까운 일을 했으면 좋겠다.
이제는 발전적인 일 좀 하고싶다.
한 회사의 특수성에만 얽매여서 다른데에선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일 말고..

하여튼.. 요즘 계속 땅굴을 파고 메꾸는 작업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구멍을 메우면 또 얼마나 더 파야 하는지 엄두가 안나지만 그래도 파고 있다.
부디 빨리 내가 바라던 지상낙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목적지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그럼 잠깐만이라도 웃으며 시원한 물로 목이라도 축일 수 있겠지.
그 목적지 뒤에는 또 새로운 일이 일어나더라도 말이다.

P.S. 본 글에 북한군을 옹호하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냥 취준의 힘듦을 땅굴 파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도라산역 여행기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다음 시간에 계속..

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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