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만에 면접 일정이 잡혔다.

최근들어 시험 준비만 하느라.. 외모를 가꿀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간만에 집에 가서 엄마한테 눈썹정리를 해달라고 했다.

엄마가 눈썹정리를 해주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30 중반에 면접 가는 딸을 위해 눈썹 정리를 해주는 엄마라니..
엄마한테 속상하진 않은지 물어봤다.
엄마는…..  너는 어렸을 때부터 남들보다 좀 느린 편이었다고.. 그러니까 괜찮다고 해주셨다.
엄마 말을 듣는데 눈에서 자꾸 눈물이 났다.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려고 했는데 소용이 없었다.

엄마는 말 없이 눈썹을 다듬다가 내 눈에 나오는 눈물을 휴지로 닦아주었다.



2.

면접을 가려면 오전 9시 반까지 서울 강남 한복판에 도착해야만 했다.
도저히 당일날 새벽에 화장하고 올라갈 자신이 없어서, 면접 전날에 짐을 싸고 한 비즈니스 호텔에 숙박을 했다.
면접장과는 불과 30분정도 되는 거리였다.

호텔에 부랴부랴 도착해서.. 근처 편의점에서 먹을걸 사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그래도 간만에 밖에 나왔다고 근처의 풍경을 보자니 속절없이 좋기만 했다.
그치만 호텔에서, 편의점에서 사온 음식을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아직 준비되지 않은 면접 자료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난번 면접장소에서 아이패드를 전혀 못썼던게 생각나서, 어떻게든 자료를 서면으로 갖고 있어야 계속 볼텐데.. 라는 마음밖에 없었던 것 같다.

자료가 어느정도 정리가 됐다고 생각한게 오후 10시..
호텔 프론트에 연락해서 프린트가 되는지 확인 후, 자료를 출력할 수 있었다.
밤 12시까지 가족들한테 약간의 인사와, 자료를 보느라 시간은 너무나 훅훅 지나갔다.
여전히 준비가 잘 되지 않은 것만 같아서 너무 마음이 이상했는데.. 내일 가야하니까 억지로 잠을 청했다.

침대는 푹신하고 방 안도 적당한 온도였지만,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하룻밤 새 잠에서 2~3번씩 깨다보니, 잠에서 다 깬게 오전 6시 무렵이었다.
비몽사몽하면서 씻고 부랴부랴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3.

그 날은 참으로 더운 날이었다.
5월 처음으로 해가 뜰 때의 온도가 30도가 되는 날이었다.
그 온도를 뚫고 정장 차림으로 가방과 캐리어를 끌고 면접장까지 갔다.

오전 9시 좀 넘어서 도착하고..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니..
사전에 공지된 대로 2번의 시험을 봤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NCS와 인성검사를 보고.. 너무 배고팠는데 12시 반부터 면접이 잡혀 있어서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다.
간단히 바나나와 메추리알로 요기를 하고.. 허겁지겁 올라갔다.

첫 면접에서 1시간 반동안 또다시 자괴감이 들었던 것만 같다.
이 때까지 나름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대답을 할 때 면접관의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을 보면서..
아 망했다.. 라는 생각이 다시금 떠올랐고..
면접관이 나보다 더 나은 다른 면접자에게 더 관심을 보일 때,
아.. 진짜 망했다.. 라는 생각이 더 떠올라서 긴장감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하지만 한편으론 나는 너스레를 떠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초라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여유가 있어보여야 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이 회사에 오는게 간절하지만, 만일 안되더라도 그냥 최소한의 자존감은 계속 갖고있어야, 이 면접 이후에도 나를 지킬 수 있을것만 같았다.
면접이 끝나도 내 삶은 계속 이어지니까.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너스레를 떨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지금의 회사 사람들과 같이 근무해왔던 시간들이었다.



4.

그 이후에 이어진 영어 면접.
이번 면접에는 1대 1로 이뤄졌다.
면접 초반에 간단한 아이스브레이킹을 했는데, 내가 해외 경험이 없다고 대답하자, 놀란 얼굴로 진짜 해외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냐고 내게 되물어봤다.
지난 10년동안 여러 곳에서 영어도 배워보고.. 영어면접도 몇번 해봤지만.. 상대방의 그런 말에 내가 더 살짝 당황스럽고 웃음이 났다.

그래.. 예전에는 해외경험이 없어도 외국인이랑 의사소통이 된다는걸 자부심으로 느끼기도 했지..
이제는 이 나이 되도록 해외경험이 없다는게 좀 창피할 일일수도 있지..
라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그치만 참으로 실로 오랜만에 영어로 말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결국 외국어를 좋아했지.. 라는 과거의 행복한 기분이 다시금 들었다.
7분이라는 시간이 마치 7초와 같았다.



5.

돌아오는 길에 서울에서 꽃을 사서 내려왔다.
마치 내 인생이 꽃다발의 꽃과 같았다고 생각했다.
24살 12월, 부산의 한국선급에서 낮 12시부터 밤 10시까지 3개의 면접을 보고..
부랴부랴 대전으로 가는 마지막 KTX의 창가에서, 창틀의 노란 조명에 비치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내가 언제 이렇게 눈가에 주름이 생겼나.. 작게 속상해할 때가 있었다.
그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어딘가에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고.. 당연히 내 외모는 그 때보다 더 수그러 들었으리라..
그래서.. 평소엔 스스로 나무같은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지만..
그 날은 유독 내가 꽃다발로 만들어진.. 시간이 지나면 시들고야 말 존재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꽃다발을 받아보니, 그 찰나의 아름다운 순간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찰나이기에 더 아름다운거라고.. 그냥 이 순간도 내 인생의 청춘의 한 순간인거라고..
그래서 기념하기 위해 꽃다발을 사서 내려왔다.

그 날의 bgm은 왕페이의 몽중인이었다.
5년 전, 한 밤중에 강남에 무역 교육을 들으러 갔을 때, 비오는 고속버스에서 들었던 곡이었는데..
그냥 지금 이 순간에 들으면 수미쌍관에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경삼림의 왕페이도, 결국엔 양조위를 두고 도중에 자기 꿈 찾아서 캘리포니아로 스튜어디스 하러 갔었으니까..
청춘의 꿈의 시작과 마무리에는 이 노래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6.

회사에 돌아오니, 상사 중에 한 명이 자꾸 나한테 면접을 보러 갔다오지 않았냐 물었다.
그 분도 여러차례 다른데에서 이직을 해오신 분이고, 평소에 나한테 응원을 해주셨기에 순순히 그랬다고 대답했다.
잘 봤냐 물어보기에, 잘 보진 못했지만 열심히는 했다고 대답했다.
나한테 또 다른데는 면접 본 데는 없냐고 물었다.
다른데는 아직 필기 통과도 어렵다고 이야기 했다.
내 앞에서 ”왜 안되지“라고 하는데 순간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자신없어 하는 모습때문에 잘 안되는게 아니냐며, 나한테 뭐라 말했다.

정작 나는.. 이번 면접에는 승패는 크게 상관이 없었는데..
그냥.. 끝을 낼 수 있어서 좋았다는 뿌듯함과, 이거면 됐다는 만족감이 컸었는데..

그걸 겪고 나서.. 아무리 응원을 받아도, 이제는 더이상 내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른사람한테 함부로 섣불리 이래라 저래라 하질 않는데,
왜 타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지 모르겠다.

내 삶을 대신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내가 작년과 이번 면접까지 어떤 마음으로 임했고.. 지금은 또 어떤 마음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 사람을 비롯한, 내게 한마디씩 얹는 사람들은 알까?
그들이 말하는 작은 한마디가.. 나한테는 얼마나 비수가 되어서 마음에 꽂히는지..
본인들의 의도가 나쁜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내가 느끼기에 아프면 아픈거잖아.



요즘은 그냥.. 잘 모르겠다.
사실 이제는 뭘 새로 할 힘도 없다.
내 시간을 너무 허무하게만 쓴 것만 같아.

나는 앞으로 인위적으로 뭘 아등바등 하려고 하지는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내 뜻대로 안되는 인생.. 그냥 힘이 빠지면 파도를 타고 돌아다니는 해파리처럼 살아야지..

나는 해파리다.

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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