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만에 도서관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 눈에 띄길래 읽어보았다.
2018년 1월에 1쇄를 찍었는데 2월 28일에 6쇄를 찍을 정도로 잘 팔린 책인거 같은데.. 암튼..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한국, 일본 양국에서 워낙 유명한 작가인건 두 말하면 입만 아플 정도이니..

옛날부터 몇년 째 소설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킨,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란 책이 아마 대표적인 책이리라..

이번에 읽은 ‘연애의 행방’은 사토자와 스키장을 놀러간, 도쿄의 한 호텔의 직원 무리 및 그의 가족 이야기가 버무려진 소설이다.
하지만 특징이라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처럼 각 챕터가 옴니버스 식으로 움직인다는 점...
그러면서도 종국에 책을 한 권 다 읽고 나면... ‘뭐야, 이게 다 이어지는 이야기였어?’라고 놀라게 만드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각자 캐릭터들이 자기의 이야기를 하지만 종국에는 다 스토리가 이어지면서, 마치 그 캐릭터들이 실제로 어디선가 살아있을 것만 같은 생동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약 400, 500 페이지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두께라면..
연애의 행방은 옮긴이의 말까지 다 포함해서 300페이지 남짓이니.. 만일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한번도 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가볍게 ‘연애의 행방’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하다.
단, 연애의 행방은 ‘사랑’이야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처럼 일상적인 고민에 포커스가 맞춰진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안좋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브리짓 존스 시리즈 같이 수치스러운 행동하는 주인공에게 과몰입해서 공감성 수치를 느끼는 독자들에게도 역시 약간 비추다..
거의 여러 에피소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히다’라는 캐릭터가 있는데, 그 캐릭터가 호텔의 일식 레스토랑에선 일을 되게 잘하는데, 그 외의 일상생활에선 주변 분위기도 잘 못읽고 융통성도 없는, NFL풋볼만 좋아하는 마이웨이로 나오기 때문에...
즉, 사실상 쑥맥 내지는 오덕 비슷한 느낌?
그러니까 하루카쨩 하악하악 이런 느낌이 아니라 걍 자기가 관심있어 하는 분야에만큼은 전문적인데 이걸 여유롭게 여자에게 잘 풀지 못하는 남자의 느낌이었다.. 업무 환경이 아니고서야 사적으론 본인 외모에도 별로 크게 관심 없어하고..
그렇기 때문에 여자랑 사귀기도 전에 먼저 프로포즈부터 할까? 라는 면모도 있고, 반대로 1년 가까이 썸 비슷한거 타놓고 사귀자는 말을 안하는 경우도 있다.
왜 이렇게 사람이 극단적이냐고?
그건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
다 그 놈의 미유키 때문이다... 어후.. 미유키-고타 커플은 마지막까지 딥빡이다...
내가 보기엔 둘이 똑같다.. 똥차처리한겨.. 둘다..

글고 마지막에 모모미 얘기도 약간 공감성 수치를 겪을 수 있을 만한 내용이었다.
내가 모모미였으면 어땠을까... 아마 곤돌라에서 다 깽판을 쳤을 수도 있지..

또한 사랑이라면 자고로 순수하고 진지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독자에게도 역시 약간 비추다..
히다와 콤비로 나오는 미즈키도 그렇고, 맨처음과 마지막 에피소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고타도 그렇고... 다 바람둥이 새끼들이다.
인간들이 진짜 인생을 그딴식으로 살면 안된다.
아니 뭔놈의 프로포즈를 딴여자랑 거시기한거 하려다가 하는 미친놈이 어딨어? 했는데 여기있네...
근데 그걸 알고도 옆에 있는 여자들은 뭐여... 대단....
진짜 칭찬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하여간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처럼 여주인공 죽은 뒤에도 오랫동안 여주를 못잊는 남주가 나오는 러브스토리를 좋아하는 1,20대 독자가 있다면 오히려 보라고 권해주고 싶어요.
이거 보고 환상 와장창 깨버렸으면.. 현실 연애는 이렇게 구질구질한 것이다!!!! 라는걸 보여주고 싶네요.

하여간 모처럼만에 현실에 있을 법한, 흡인력 있는 러브스토리를 재밌게 잘 본 느낌이다.
나중에 역자인 양윤옥님께서 쓰신 옮긴이의 말에서, 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스노우보드 전문지인 Snowboarder라는 잡지에 기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적은 소설이라고 하셨는데...
진짜 집필만 하시는거든, 잡지에 기고 하시는거든 뭐든 좋으니까 후속작 좀 내주십쇼.. ㅠㅠ

마지막 에피소드인 히다와 모모미의 그 뒤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네여 ㅠㅠㅠㅠ
일해라 히가시노 ㅠㅠㅠㅠ

아 그리고 원래 이 책의 원제가 恋のゴンドラ, 즉, ‘사랑의 곤돌라’였다고 하는데, 왜 그런 제목이 붙었는지 확실히 알겠는 느낌...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이 곤돌라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처음에 고타-미유키 커플의, 과연 내 바람이 들킬건가부터 시작해서..
히다가 본인이 좋아하는 마호에게 미즈키는 바람둥이니 조심하쇼라고 충고해주는거나..
겔팅이라고 스키장 내에서 미팅하는거..
그리고 마지막 모모미 에피소드까지..

근데 만약 원제 그대로 번역했으면 이게뭐야? 싶었겠지..
아마 나라면... 스키를 한번도 타본 적이 없으니까..
곤돌라? 이사할때 쓰는 그 곤돌라? 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ㅠㅠ
그래서 책 제목을 연애의 행방이라고 하는 대신에, 책 디자인에 스키장 곤돌라 그림이 그려져 있는건가? 싶었는데.. 그것도 참 인상 깊었다.
하여간 모처럼만에 재밌는 소설이었다.

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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