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꿈의 대장정을 2주 전에 마무리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서울 양재의 본사 10층 대회의실에서 본 최종면접이었다.
전날까지 무슨 질문이 나올지 몰라서 기대와 걱정, 불안을 한가득 안고 올라간 면접장이었다.
이 자리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그치만 최종면접의 9명 사이에 끼어서,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다시 돌아보면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남들은 본인의 경험과 매칭해서 대기업 최종면접자들 마냥 잘도 말하던데..
나름 면접을 많이 봤다고 생각했음에도, 면접관에 의해 말이 자꾸 끊기는 시간들 속에서.. 초조하고 두려웠다.
면접장에서 면접에 대한 답변을 했어야 했는데, 자꾸 스스로에 대한 변명만을 답하게 되었던거 같다.

다른 면접자들 답변을 들으면서, 스스로가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영자신문을 쓴 경험이 있고, 누군가는 논문을 썼고..
누군가는 무역에 대한 경험이 있고..
누군가는 여러 해외경험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꾸만 스스로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잘 살지는 못했던것만 같아..
어쩌면 열심히 살지도 못했던 것만 같고..

보통 면접을 보면.. 잘 봤다는 예상은 빗나갈 때도 있었지만..
망했다는 예감은 어김없이 틀린 적이 없었다. 나는 그 날의 마지막 그룹이었기 때문에..
면접장을 나가는 길은 어느덧 컴컴해졌다.
다시는 이 근처에 올 일이 없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고, 면접 전에 긴장해서 음식 하나 삼키지 못했던 것들이, 그 회사 문을 나서자마자 엄청난 허기가 되어서 나를 덮쳤다.
그래서.. 나가는 길에 보이는 가장 첫 식당인 한 국밥집에 들어갔다.
가장 싼 국밥이 12,000원인걸 보고, 강남엔 국밥도 비싸네.. 싶었다.
밥을 먹는데 술 생각이 생각나서 맥주를 한병 시키고, 밥과 같이 먹었다.
면접을 말아먹었으니, 국밥도 말아먹어야겠다, 라는 생각이었다.
국 속의 고기와 소면을 꼭꼭 씹어먹고, 맥주를 한잔 들이켰다.

그때는 하루의 의지력이 다 바닥나 버려서, 혼잣말을 하면서 면접을 복기했다.
자책도 좀 했던거 같고..
이제는 다시 올 일이 없는, 국밥집 창가 너머로 보이는 많은 고층건물들과 도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눈 속에 넣기 바빴다.

그 사이, 나와 가까운 다른 테이블에서 누군가가 여러번 기침을 하기에, 설마.. 라는 불안함도 있었지만..
설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로부터 5일 뒤, 심한 감기몸살에 걸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기도 어려운데.. 회사에는 가야 하니.. 부랴부랴 나가게 됐다.
고열과 기침, 두통, 근육통 등 때문에 너무 괴로웠으나.. 코로나 자가 키트에는 음성으로 나와서 단순 감기몸살인가 했다.
다음날 연차를 쓰고.. 집에서 누워있는데.. 오후 4시까지 일어날 수가 없어서.. 이대로는 내일 출근이 어렵겠다 싶어서 간신히 근처 병원을 갔다.
코로나 양성이었다.
6일을 내리 앓았고, 통증이 거의 끝나는 마지막날에 최종결과가 나왔는데, 역시 내 예상을 한치도 빗나가지 않는 결과였다.
머리로는 이해가 됐으나, 마음은 괴로웠다.

지난 14년간의 오랜 꿈의 성적표였고, 지난 3년간의 노력의 결과였다.
풍운의 꿈을 안고 배웠던 영어, 일어 같은 외국어부터.. 무역, 경제, 그리고 내 전공이었던 경영까지..
그리고 부수적으로 배워야 했던 NCS와 한국사까지..
참으로 얼마나 다양한걸 제로베이스부터 어느정도 실력이 되기 위해 그토록 많은 날들을 지냈던가..

그 모든 것들의 성적표 앞에서.. 나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83점일 뿐이었다.
172명 중, 최종 6명에 들어가지 못하는 실력일 뿐이었고..
사실 단순히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꿈의 크기에 비해 내 능력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게 모든 사실의 전부였다.
회사는 감성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회사 일의 대부분은 이성과 수치로 내 능력치를 증명해야만 하는거니까..
나는 명백히 나를 객관적으로 입증시키지 못했던거다. 필요한 사람이라는 수치에 내가 맞지 않았던 것 뿐이다.
그냥.. 그 뿐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자취방 벽면에 물이 줄줄 새는걸 발견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회사에 다시 돌아갔다. 내 현실이 바뀌는건 없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내 현실과 미래가 바뀔수는 없을수는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덧 작은 절망이 내게로 성큼 다가왔다.
인생이 나한테 일주일 단위로 너무 다이나믹한 감정을 경험하게 해줘서, 조금 헛웃음이 났다.

이런 나에게 내 옛날 오랜 벗은, 문자로 큰 위로를 건넸다.
똑같은 경험과 실패를 해도, 그 후의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라고. 그 동안 수고했다고..
지금의 실패에 너무 오래, 깊게 좌절하지 말라고..

그대의 상냥함에 그러겠노라 대답했지만..
사실은 이제 잘 모르겠다. 나는 능력도 없는 주제에, 내 딴엔 너무 오랫동안 고군분투했고..
작은 몇 번의 성공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여러 큰 실패를 겪어오면서 마음도 많이 다쳐왔으니..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이다..
이젠 인생을 잘 모르겠다. 그냥 나는.. 잘 모르는 인생을 그냥저냥 살고 있다.
이런게 인생이고 행복이겠지.. 나는 행복하다.

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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