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나한테 있어서는 35번째 새해이다.

내가 예전 회사를 그만둔지도 어느덧 햇수로 5년째가 되었고,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때부터 어느덧 1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5년동안 작은 성공과 큰 실패를 많이 겪어왔다고 생각한다.
회사 사정과 일이 적성에 안맞아서 6년동안 다닌 회사를 뒤로했던 일..
1년동안 무역자격증과 영어를 더 잘해보겠다고 고군분투하면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력서를 넣고 면접봤던 일..
2020년, 새로 이직했던 회사에서 코로나 때문에 TO가 줄었다며 나가게 된 일,
그 뒤에 20살 때부터 그렇게 가고싶었던 공기업 가겠다고 경제, NCS, 한국사를 처음 배웠던 일,
결국 토익이 900점을 넘지 못해서 aT에 서류조차 합격도 못했던 일,
그래서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900점을 어떻게든 넘겼는데 엄마의 병환으로 공부를 그만두고 하루 빨리 취업으로 전환했어야 했던 일,
어떻게 운좋게 들어간 회사에서 최저시급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지만.. 내 권한에 비해 다양하고 많은 업무를 맡게 되어서 여러 날을 야근해가며 고군분투했던 일,
그 와중에 1년밖에 안남은 토익 만료 기간을 보고.. 이제 정말 내 인생으로 마지막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그토록 꿈꾸고 간절히 근무하길 바랐던 KOTRA에 도전했던 일,
시험도 붙고 면접도 붙고 드디어 되나 싶었는데.. 결국 최종면접에서 미끄러져서 주말에 혼자 빈 방에서 나도 울고.. 결로때문에 집 천장도 울었던 일,
그리고 12월 20일부로 토익 만료… ㅎ

어찌보면 24살에 공기업을 생각하며 우려했던 가장 최악의 상황을, 35살의 내가 앞두고 있다.
그 때의 나는, 많은 자신이 없었다.
꿈의 기업은 애초부터 내 실력으로는 안될거라 생각했다.
다른 공기업 역시, 매번 벼락치기만 하는 나한테는 과분할거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막 전공에서 NCS로 넘어가던 시기였는데, 나는 똑똑하지 않아서 NCS도 잘 못풀거라고 생각했다.
한국사 자격증은 또 언제 따냐며 한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공공부를 계속한다고 해도, 토익이 만료가 됐을 때 다시 또 토익점수를 만들 수 있을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을 겪었고, 지난 5년동안은 내가 번 돈보다 쓴 돈이 더 많을 지경이었다.
그 5년동안 생계는 나아지지 않았고 나는 항상 외롭고 배고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들었던 국내여행, 뮤지컬,연극 등의 관람, 맛집탐방 등의 취미는 못한 지 꽤 오래였다.
남들이 월급을 모아서 해외여행을 가고, 명품을 살 때, 그건 내게 감히 언감생심, 꿈도 못꾸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20대 초에 학부에서 경영을 배우면서 그토록 가고 싶었던 인사분야로 결국 취직을 못했을 때도..
20대 내내 영어와 일본어를 어떻게든 배우겠다고 퇴근 후의 시간을 쪼갰고..
30대 초에 무역자격증을 취득하고 고군분투 했는데도 결국 무역 관련해서 커리어를 시작하지 못했을 때도..
나는 수많은 시간을 좌절했다.

30대 초에는 일종의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다.
20대 중반의 갓 졸업했던 나보다는 더 많이 준비했다는 자신감도 있었지만.. 현실에서 번번이 좌절하게 되면서.. 깊은 괴로움을 느꼈다.

공기업을 준비하는 30대 중반의 나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실패를 여러차례 겪게 되면, 어느 순간 스스로가 부족하고 못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앞으로의 시간이 지나도, 이 갑갑한 현실이 절대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못난 생각이 든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한편으로는.. 도전할만큼 도전해서 후회가 별로 없다.
만약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면.. 오랜 꿈은 계속 내 마음 한 구석을 찔렀을 것이다.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도 마찬가지였겠지.

근데.. 이제는 후회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당장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의외로 속이 후련했다.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고, 불확실하고, 두렵다.
2023년의 이번 정부의 기조는 공공기관의 인원 축소이다.
무기계약직의 자연감소분부터 더 TO를 채우지 않겠다고 했고, 신규 채용도 대폭 줄인다고 했다.
그럼 가장 먼저 모가지가 날아갈까 두려운 사람은 나다.
내가 바로 그 직급이니까.

나아지지 않는 통장잔고도 또다른 위협이다.
1년 반동안 나의 생계는 나아지지 않았고, 이 자리에 있으면 물가상승률 대비 나는 해마다 더 월급이 줄어들 것이다.

업무를 하는데 권한이 부족한 것도 위험요소이다.
권한 밖의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외부에서 봤을 땐 티가 하나도 안난다는 뜻이니까..
아무리 같은 부서원들이 일 잘한다고 나를 인정해주면 뭘해.. 부서 밖에서는 티가 안난다.
나는 그래봤자 무기계약직, 김그래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었다.
앞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사실 지금은 없다.
근데 내 인생이 실패로 점철된다고 해도, 내가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에 내 과거를 돌아봤을 때,
‘실패할까봐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보다는 ‘비록 실패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시도는 했다’라는걸 선택하고 싶다.


사실 이 나이쯤 되면, 주변에서 많이들 만류한다.
결혼하려면 연애해야지, 언제까지 니가 젊을 줄 아냐,
무기계약직이라도 만족하면서 그냥 저냥 욕심을 내려놓고 설렁설렁 일하고 작은 월급에 만족해라,
나이들어서 공부한다고 하면.. 아직까지 공부하냐..
일이랑 병행하려고 치면, 야근을 하거나, 일에 너무 기운을 뺏기면 공부할 여력도 없다.
체력은 또 개똥이지..

차라리 공부할 때 응원이라도 잔뜩 받았던 고3 시절이 이제는 좀 그리워질랑 말랑할 지경이지만..
차라리 24살, 25살, 26살에 조금 더 힘내서 공부로 조지고 빨리 공기업을 들어가는게 최선이지 않았나 싶지만..
지나간 과거는 어차피 돌아갈 수 없고, 나는 오늘을, 내일을 살아볼 예정이다.


나는 또 매일 실패와 성공을 할 작정이다.
다시금 오늘의 공부시간을 못채웠다고 우울해할테지,
또 어떤 날엔 역시 올해부터 공기업 TO가 줄었구나 체감하며 절망할거다.
그리고 또 어떤 날엔 필기나 서류에서 또 떨어져서 낙담을 할거다.

하지만 올해의 목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익을 900점을 다시금 넘고, NCS를 다시 하고..
전공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필기를 더 많이 붙겠다.
그리하여 면접도 가고.. 이직을 할 예정이다.

만약 올해 끝내 이직에 실패한다면..
결국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 자리에 만족하기로 했다.

내가 스무살부터 지금까지 15년동안 배운거라곤,
최대한 후회를 적게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 뿐이었으니까.
그냥.. 그 ‘경험’이 내가 젊을 때 샀던 대부분의 것이었다.
나는 돈이 없잖아.. 그럼 나에게 주어진 한도 내에서 경험이라도 사야지.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도전을 해도 참 많은걸 걸어야 한다.
도전을 해도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는건 20대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지만,
그 한 해, 한 해가, 20대의 1년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근데, 그래도 할래.
나는 역시, 한 곳에 계속 안주하고 싶지도 않고, 후회같은 건 되도록 하고싶지 않다.


설령 내 도전이 안좋게 끝난다고 해도,
어느 날 내 블로그에 우연히 본 누군가한테는,
2010~20년대를 살아간 한 젊은이의 고군분투기로 보여지겠지..
누군가의 반면교사가 된다면 그걸로 됐다.

나는 김지인이다.

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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