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말부터 12월에는 바빴다.

11월 말,
노조의 요청으로 교대 근무자의 근무가 일부 변경됐다.
그 건으로 우리 팀의 상사들과 일주일 넘게 고심하면서, 우리 부서에 맞도록 근무 스케쥴을 변형하는 아이디어를 짜느라 고생했다.
총무팀을 통해 노조에 전달하면서..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고.. 잘 부탁드린다고 말을 전했다.



12월 초부터 중순까지는 갑자기 부서 송년회 준비를 해야 했다.
처음으로 준비해보는 송년회.
어떤 음식을 얼마나 준비할지, 어떤 선물을 하고 이벤트를 할지 모든 것이 막막했다.
심지어 영상도 만들었어야 했고..

그렇지만 많은 사람의 도움 덕분으로 해내게 됐다.
영상을 일주일동안 찍고, 막판에 12시 반까지 편집하느라 힘들었지만..
영상이 PC에 안옮겨져서 당일 이벤트 1시간 전에 부랴부랴 유튜브에 고화질로 업로드하는것도 힘들었지만..
이벤트 전날에 대설주의보라서 눈이 펑펑 오는데.. 그 눈을 뚫고 선물을 사느라 너무 힘들었지만..
이벤트 상품과 영상을 준비하느라 정작 발표준비를 하나도 하지 못해서.. ‘아.. 진짜 이번 발표 개망했다..’ 라며 절망적이었지만..
그래도 진심은 통했는지.. 당일에 다들 즐거워해주시는 모습들을 보니 너무 뿌듯했고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날에는.. 회사에 아세안 국가들의 각 정부 귀빈들이 오셔서 회사 투어를 했다.
팀장님의 요청으로 보조로 들어가게 되었다.
기존에 타기업에서는 딜러만 보다가.. 장,차관급이나 어느 회사의 대표분들을 포함해서 스무명씩 오시는데..
갑자기 의전에 투입되어서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게 생소했다.
어차피 동시통역사가 있었던 상태였고..
나는 이제 영어를 안한지 너무 오래됐고.. 코트라 결과에서도 스피킹 점수가 그닥 좋지 않았던 편이었어서..
나 혼자 괜히 의기소침해하면서.. 2시간동안 그냥 영어로 간단한 안내만 해드리고 에스코트만 해드렸다.
그 에스코트를 하느라, 귀빈들보다 몇발짝씩 앞서서 뛰어다니는 바람에 땀이 좀 많이 나긴 했지만.. 뭐.. ㅎ

한 사람만 전담마크하면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것과.. 수십명의 사람들이 가끔식 하는 이야기를 듣고 맥락을 파악하는건 좀 다른 문제구나.. 싶었다.
그치만 회계팀의 누군가는 진짜 잘하시던데.. 나 진짜 이제는 영어를 잘 못하는구나.. 싶어서 조금은 괴로운 하루였다.

그치만 투어가 다 끝날 무렵, 그 분들중에 한 분께서 나한테 감사하다고 해주셨는데..
그 별 것도 아닌 그 작은 한 마디가 위로가 됐다.



그 다음주의 12월 말의 언젠가에는 팀장님의 요청으로 경영에 대한 강의를 준비해야 했다.
학부를 졸업한게 10년이 넘었고.. 졸업 후에는 CS로만 근무했었고.. 지금은 제가 인사팀도 아닌데 이걸 하는게 자신이 없다.. 라고 말씀드렸지만..
본인들께선 해당 전공이 아니니, 전공이었던 자네가 해보는게 좋겠다고 하셨다.

부랴부랴 발표 전 날에 인터넷에서 경영전략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가며 자료를 준비했다.
차별화 전략과 원가 우위 전략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 회사의 3년치 재무상태표를 보면서 분석도 해봤다.
역시.. 졸업한지 오래됐는데 이게 될까 싶어서 ‘아.. 내일 또 개쪽 당하겠다..’ 싶었는데
그래도 당일에 다들 수고했다며 칭찬해주셨다.


2022년의 마지막 근무일에는, 갑자기 민원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월 마감을 해야 해서.. 근무자들 근무마감, 각종 부서 비용 마감들을 해야 하는데..
민원까지 받기에 너무 벅찼다. 그치만 해야지..
누군가는 그 빗발치는 민원을 받고 필드로 나가서 작업해야 하니까.. 작업을 원활하게 하려면 어쩔 수 없으니..
전화를 핸드폰으로 돌리고, 밖에서 업무처리하면서 민원을 받고 전달하느라 조금 많이 고생했고, 힘들었다.


그렇게 2022년이 끝나간다.
보통 때 같았으면, 한 해가 끝나가는게 섭섭하고.. 나이를 먹는 것 때문에 새해가 오는게 싫었을텐데..
이번엔 그냥 속이 후련했다.

그 말을 했더니.. 내 오랜 지인이,
혹시 ‘자포자기한 상태인게 아니냐’라는 말을 했다.

근데.. 자포자기라기보다는 그냥.. 속이 후련해..
나는 올해 초로 돌아가서 이 이상으로 잘 살 수 있겠냐고 물어보면.. 자신이 없다.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ㅎ
내 역량은 여기까지였던거고.. 다 쏟아냈으니..


연말이라고, 한 여자 상사가 롤링페이퍼 작성을 제안해서 작성을 하게 됐다.
롤링페이퍼에 어떤 글귀가 있을까.. 마치 평가 받는 것만 같아서 쳐다볼 용기조차 못내고 있다가..
집에 가져가서 몇 시간만에 찬찬히 읽어봤다.

상사분들이 써주셨던 글들 중, 기억나는 글귀가 있었는데..
인생은 원래 불확실하고 불안정한거니.. 매순간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말을 정규직 종사자에 들으니 조금은 아이러니했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당연했던.. 경영학에서는 ‘외부 환경은 불확실하다’ 라는 진리같은 그 말을.. 롤링페이퍼에서 다시 보게되니 기분이 이상했다.

30 중반에도 어디 하나 정착하지 못하고.. 뒤늦게 도전하겠답시고 계속 실패하는 바람에..
내 나이대의 사람들만큼조차 돈을 모으지도 못하고..
마치 물 위의 부표처럼.. 직급 차이 때문에 같은 회사 내에서도 뭔가 홀로 떠돌아다니는 것만 같은 나에게..
그 말이 묘한 위로가 됐다.

신은 공평해서 고생 끝에 낙이 올거라는 말도..
회사 그만두지 말라는 말도.. ㅎㅎ

다 그냥.. 조용한 위로가 됐다.


가끔은 회사 화장실 한 구석에서 쭈그려 앉아서.. 내 불안한 미래 때문에 숨죽여 울기도 했었는데..



2022년이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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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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