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한치 앞을 알 수도 없는 까만 밤과 같다.

어제는 모처럼만에 10년 만에 다시 만난 옛 영어 선생님과 회포를 풀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밤에 술 기운에 멀뚱히 베란다 너머를 보며, 불과 반년 전에 반년이나 준비한 회사의 서류 탈락 소식을 듣고 죽어버릴까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생각나서 감회가 새로웠다.

오늘은 엄마가 병원에 갔다왔다.
엄마의 병세가 더 심해졌다고 했다.
아무래도 수술은 이제 불가피한 선택인 것처럼 보인다.

엄마를 대전역에 태워주고, 신탄진역에서 픽업하며, 일부러 병원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 지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그냥.. 무슨 말을 들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말의 무게를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아빠의 물음에 찬찬히 답하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결국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작용과 수술 후유증은 엄마를 걱정하게 만드는 지긋지긋한 녀석들이다.
그 1년 동안 엄마는 더 약해졌다.
지난 2년 간, 좋은 명소를 갈 때마다 엄마를 낫게 해달라고 얼마나 많이 빌었던가.
그런 건 아무런 효력이 없었던 것 같다. 잠시나마 이기적인 내 위안이었을 뿐이다. 내 위안.
그리고 그런 행동 자체도 엄마한테 알게 모르게 또 부담을 지웠겠지.
나는 어쨌든 불속성 효자다. 불효자란 얘기다.

엄마는 후유증을 갖고 살지도 모르는 앞 날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기적인 딸년은, 진짜 지밖에 모르기에, 엄마에게 수술을 종용하고 말았다.
1년 뒤에 더 심해지면 어쩔거냐고. 후유증은 생길수도 있지만 안생길 수도 있지 않냐고.. 또 1년 뒤에 더 심해지면, 수술도 못하고 엄마에게 더 손을 못쓰게 되면 그 때는 우리가 후회하지 않겠냐고.
이건 다 지가 안아프니까, 엄마가 아프니까 지랄하는거다. 지 인생 아니라고 막말하는거지.

이제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잘 사는건지,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후회를 덜하는 선택을 하는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인간은 경영학이나 고전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것처럼 모든 정보를 다 아는 합리적인 생명체가 아닌지라, 항상 미래를 모른 채로 그냥 저냥 더듬거리며 가로등도 없는 깊은 밤을 걷기만 할 뿐이다.
후회를 덜한다 생각해도 뒤돌아보면 후회 투성이인게 인생. 당장 내일, 몇시간 뒤조차 모르는게 인생.

10대, 20대 때에는 단순히 사랑, 회사가 힘들다고 징징대는 거였다면..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소중히 여겼던 것들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요즘은 젊은 날에 성공한 연예인들이 부럽다.
그들의 미모, 명예, 인기.. 당연히 안부럽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런걸 다 떠나서 그들이 부러운 이유는.. 적어도 그들은 가족들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부모님 몸에 좋다는거 하나는 더 챙겨드리고, 몸에 안좋은 환경은 바꿀 수 있는 재력이 있다는거..
그냥 나는 그런게 후회스럽다.

어렸을 적, 집에서 엄마와 돈까스를 만들면서 그런 말을 했다.
나중에 어른 되면 엄마한테 맛있는 돈까스 많이 많이 사줄거라고.
근데 현실은.. 모든 게 요원하기만 하다.
열심히 살았다 생각했는데 남는게 없다.

엄마는 나같은 딸을 낳고 길러서 과연 행복했을까?

비가오면 개울가에서 울부짖는 청개구리는 되지 말자 다짐한 게 25년도 더 된 옛날이건만, 나는 청개구리였다.

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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