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퇴사하면 퇴사 메일을 보내는 부류의 인간이라, 6년 다닌 회사의 퇴사 이후의 삶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근데.. 지난 며칠동안 멋들어지게 쓰고 싶었던 말은 머릿 속에 참 많았는데.. 막상 쓰려니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긴 하지만..

백수가 되기 직전부터 도서관을 다니며 인강을 듣고 무역영어를 취득하기 시작해서, 국제무역사, 원산지관리사를 땄다.
‘공’자로 들어가는 데는 아무래도 취직하기 어렵겠지.. 그리고 나는 외국어도 좋아했으니까 그 관련일을 하면 행복하지 않을까.. 싶어서 딴 자격증들이었다.
그 이후에는 3개월동안 서울 가서 에듀콘에서 영어를 배웠다. 9 to 5로 영어를 내내 쓴다는건 너무 좋았다.
그 전에 K모 대학의 어학센터와 C대학의 언어교육원, 대전의 영어카페였던 Talkholic을 거치고..
미국인 친구한테 한국어를 가르치며 틈틈이 배운 영어 실력을 내내 써먹는다는게 좋았다..
그 영어 하나 배우기 위해서 일하면서 틈틈이 봤던 영어 원서가 몇권이고, 프렌즈 시즌 1부터 10까지 반복해서 봤던게 몇 년이던가..
뭔가 배운걸 본격적으로 써먹는다는건 힘들지만 재밌었다. 기존에 대학에서 공부만 하느라 못했던 각종 술자리도 재밌었고.. 대학생활을 이렇게 했으면 더 행복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곳이었다.

그 다음에는 한 공기업 시험을 봤는데 NCS 점수를 컷트라인에서 3점을 남겨놓고 떨어졌다는걸 뒤늦게 알게됐다.
결국 연구소의 1년치 보고서와 계약 관련 법률 등을 조사하고 외우고 시험을 풀고 논술을 작성했으나,
그걸 평가 당하기도 전에 NCS 컷트라인을 못넘어서 모든 답안이 폐기처분 됐다.

동시에 한 일본계 기업에서도 최종면접의 문턱을 넘질 못했다.
그 때 한국인 사장과 일본인 사장 둘이 들어왔는데, 한국인 사장이 나에게 비웃듯이 일본어는 할줄 아냐고 물었다.
일본어를 안쓴지 1년이 다되어가는 시점이었건만, 그래도 배운건 머릿속에 남아있었는지 하고싶은 말은 할 수 있었다.
대신에 다른 한국어로 된 질문을 답할 때 표정이 일그러진 것으로 봐서 그게 떨어진 원인이었던 듯 했다.

이력서를 썼고 면접을 부르면 갔다.
백수가 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던 도중에 작은 교통사고가 났다.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나보다 3살이나 어린, 한 여자 공무원이었다. 사고가 나서, 자신의 남편에게 어쩔줄 몰라하며 전화를 했다.
나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낑낑댔지만,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그녀를 본 순간, 그 사람이 부러웠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도 결국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 사람은 나보다 어린데도 안정적인 직장도 있고, 가정도 있었다는게 부러웠다.

여튼 그건 그거고 나는 교통사고를 당한 입장이니까 병원에 치료받으러 입원했는데 면접일이 잡혔고, 취직이 됐으니까 치료도 덜 받고 그냥 출근하러 갔다.
가니까 기존에 해보지 못했던 일,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웠다.
준비했던 자격증과는 거의 겹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관리해야 할 품목들이 수백가지가 넘어가고, 일상적으로 사용해야 할 시스템은 오류가 참 많고..
업무에 익숙해져야 하고 그 사이에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야 하고..

내가 일을 빨리 배우지 못한다는걸 처절하게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인수인계를 받았을 때, ‘왜’ 해야하는지 모르면 내가 그 업무 과정 자체를 외우지 못한다는 것도 뼈저리게 알던 시간들이었다.
업무를 익히면서도, 선임자가 준 인수인계 파일을 붙들고 업무매뉴얼을 내 식대로, 이해할 수 있게 최대한 덧붙이는 작업을 계속했다.
교통사고 때문에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매일 울면서 자정까지 남아있기가 일쑤였다.
전임자가 남긴 일들을 하는게 버거웠다. 그리고 5개가 넘는 프로그램의 수십가지가 되는 기능들을 그래도 원만하게 사용하려면 제품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제품 교육 자체를 받을 시간도 없이 업무에 내던져진것도 이유라면 이유일테지..
한편으론 억울하기도 했다. 난 퇴사할 때 매일 자정~새벽4시까지 남아서 내가 처리할 거 거의 처리하고 나갔는데.. 매뉴얼도 진짜 자세히 만들어주고 나갔는데.. 후임자가 계속 물어봐도 이해될때까지 알려줬는데..
하지만 그건 의미가 없는거다. 왜냐면 이 전임자도 나름 신경 많이 써줘가며 알려준거였으니까. 그렇게 계속 웃으면서 답답한 후임 알려주는게 어디 쉬운 일이었겠나. 그 사람도 힘들었을 터였다.

결국 나는 또 내 특기를 살려서 수백 페이지의 아름다운 업무매뉴얼을 남겨놓고, 많은 임원진들의 칭찬도 받았건만, 코로나 때문에 본사에서 TO 줄여야 하니까 나가달라 그래서 짐쌌다.
짤라서 미안하다는데 어떡하겠나. 미안한건 미안한거고 결과는 결과다. 나는 을도 아니고 병정무조차 안되는 인간이니까 별 수 없지.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그 다음은 2주동안 폐인처럼 지내다가, 어차피 하고싶었던 일도 못하고 어딜 가든 몸을 갈아 넣어야 하는거라면, 이제는 원래부터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공기업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토익도 다시 갱신하고, 경제공부를 처음 시작했고, NCS는 수리를 조져보겠다는 생각으로 PSAT 기본서들을 독파하기 시작했다.

괴로웠다.
경제학자들이 아름답게 경제가 어떻게 잘 풀릴지 딱 잘 토론해서 결론만 나왔으면 좋았으련만, 신고전학파냐, 신케인즈학파냐에 따라서 또 주장하는게 달랐다.
또 미시경제의 재난보조금과 공익형 직불제, 최저임금인상이 어떻게 경제에 영향을 주는지 배우는 것도 벅찼다.
하지만 그러고나서야 처음으로 시중의 경제신문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됐다. 같은 경제현상을 두고,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누군가는 나라가 망한다며 난리를 칠수도 있고, 누군가는 나라를 위하는거라며 칭찬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후반부로 공부할수록 재밌긴 했는데, 근데 대체적으로 이해가 안가서 110강 짜리 강의 보는데 울면서 봤다.
한 강의를 3번씩은 듣고, 내 나름대로 정리하려고 필기를 미친듯이 했다.
하지만 지금도 한 50%정도만 이해 되는거 같다.. 경제학은 정말.. 문과의 브레인이 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경제도 못하고 영어도 못하는가..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을 한탄하며 괴로워했다.

그리고 SRT를 타고 가고 싶었던 곳 중 한 곳의 시험을 보고,
또 PSAT용 NCS 책을 조지고, 또다시 1년치 신문을 조지고, 연구보고서를 조지려고 하던 중, 이번엔 서류에서 탈락한걸 알게된다.
왜지, 왤까, 토익이 900을 안넘어서일까? 아니면 남들은 다 있는 한능검이 없어서일까?
서류에서 탈락하고 나서야 그냥 스쳐지나갔던 ‘한능검, 우대 5%’라는 글씨가 엄청 커져서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 다음은 12월 마지막주에 토익을 시험을 치러 5주동안 절박한 마음으로 시중의 ETS 1000제를 다 풀고 오답정리를 하고, 하고, 또 했다.
LC는 485인데 RC가 400 초반이라 900을 못넘겼으니까.
인터넷의 해커스 모의고사 RC 6개월치를 다 풀고, 오답정리를 하고, ybm 인스타 구독하면서 올라와 있는 팟 5,6 문제를 다 쓸어담고 풀고 또 풀었다.
이번에 못넘기면 공기업 준비는 다 관둬야지, 라고 절박한 심정으로 했다.
8년 전에 960점을 넘겼을 때, RC에서 문법으론 거의 모르는게 없을 정도였다는걸 생각하며, 이정도면 괜찮겠다 안주하지 않고 그냥 계속 했다.

결국 900점을 넘기고, 2월 초의 한능검을 준비했다.
1급이 필요했는데 올해부터 7급 공무원에서도 한국사 대신 한능검으로 대체되어서 서버 폭파되고 접수조차 힘들었다.
근데 어떡함, 나도 점수가 필요한데.
인강을 또 40강을 듣고, 모르는 내용을 채워넣기에 바빴다.
역시 절박했다. 나는 그 ‘한능검, 우대 5%’가 없는 인간이었고, 그거 때문이었는지 무엇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서류에서 떨어졌으니까..
70점 안팎으로 나오는 점수를 보며, 계속 반복해서 오답을 정리했고.. 어처구니없지만 참 다행스럽게도 100점으로 1급을 획득했다.

한능검을 공부하면서 한편으론 NCS의 비타민, 맥NCS를 하면서 계산 시간을 줄이는 연습을 했다.
아무리 NCS를 풀어도, 계산방법을 알아도 시험만 보면 속도가 안나서..
도대체 어떻게 사람들은 한 문제를 1분 30초만에 주파한다는건가.. 너무 괴로웠다.

그리고 토익스피킹 시험도 만료가 가까워져서.. 에듀콘에서 특강으로 들었던 토익스피킹 책을 다시 주섬주섬 꺼내서 3주동안 다시 리뷰를 했다..
당연히 이번에도 토익스피킹 Lv.7이 나왔다.
문법이 좀 틀려서 8은 안나오지만.. 어쩌겠나.. 해외 경험도 없고, 내가 평생 영어만 공부한 사람도 아닌 것을. 일하면서 틈틈히 영어회화 공부했던 게 다일 뿐인데..

그 다음엔 다시 NCS를 하면서 거시경제 리뷰를 다시 하던 중이었는데,
엄마의 병세가 더 악화됐다는걸 알게됐다.
종합병원에서 이제는 수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를 대신해서 가게를 맡아서 하기로 했다.
열심히 요리를 배우고 혼나가며 일을 했다.
하지만 역시 초짜가 몇십년의 일의 속도와 맛을 따라잡을 순 없었다. 여전히 엄마는 가게에 나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험삼아서 봤던 모 기업의 NCS 성적이 상위 10%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을 보러 가도 되는지,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 1달이 걸렸다.
일하면서 그 날만을 기다렸다.
탈락이었다.
부모님의 상심이 컸다.

부모님을 빨리 일을 관두게 하고 싶었다.
그나마 NCS를 주로 보거나, NCS조차 보지 않는 곳으로 계속 서류를 넣었다.

그리고 내일, 출근을 한다.
그치만 결국 ‘공’으로 시작하는 곳은 아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경력으로 인정되는 곳도 아니다.
기존 업무와의 업무 연관성도 없고, 자격증은 쓸모가 없고, 페이가 쎈 것도 아니다. 또 물경력이겠지.

그치만 사실은 무섭다.
일에대한 경험이 마냥 좋았던건 아니어서..
맨날 울면서 야근하고.. 아니면 사람때문에 괴로웠고..
그래도 웃자.
원래 인생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거야.
오늘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내가 쓰는 내 역사는 달라지는거야.


지난 2년 반, 다사다난했다.
쉬웠던 순간은 별로 없었다.
회사는 전쟁터고 나가면 지옥이라더니, 매 순간이 어려웠다.

근데 시간을 돌려서 다시 그 회사에 계속 있을거냐고 물어보면,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엔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는거다.
그리고 경영학에선 그걸 SWOT 매트릭스의 Threat 으로 구별짓는다.
피할 수 없는 위협요소인데.. 그걸 한 개인이 어찌하겠나.
그냥 회색 코뿔소의 위기처럼.. 위험요소가 보여도 ‘괜찮겠지.’하다가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것을..

그렇다고 공기업을 도전한 것도, 성공은 못했다.
절박하지 않은 순간엔 임계치를 넘지 못했고, 절박해진 다음에야 임계치를 넘어서 무언가 성취했지만,
내 역량이 부족해서인지 11개월은 참으로 짧은 시간이었고, 11개월동안 새로운걸 거의 제로베이스에서 계속 성취하는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도전한다는 게 참으로 벅찼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바위가 깨졌나.. 싶으면 또 다른 바위를 깨러 무수히 많은 계란을 던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여러개의 바위들을 깼지… 그렇게 던진 계란이 수백 수천개였고…
저녁 5,6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공부해도 순공시간이 8시간 안팎밖에 안되는 스스로를 보고.. 떠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난 왜 이것밖에 못하는걸까.. 좌절하던 내가 있었다.
원하던 점수가 원하던 기간 내에 안나와서 괴로워하던 내가 있었고..
그리고 나는 무직이 된 채로 1년이 넘어가면 미래가 불안해지고, 초조해지는 스타일이란걸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 스스로한테는 위로해주고 칭찬해주고 싶다.
뭐.. 비록 2년 반동안 계속 무언가를 하느라 인간관계는 다 끊겼지만……… ㅎ
결국 원하던 성취는 이뤄내진 못했지만, 나는 내가 해온걸 알잖아.

노력은 배신을 한다.
살다보니 배신을 하더라고.
노력이란 공든 탑은 무너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요즘은 커리어가 단절되지 않고 한 커리어로 쭉 열심히 해서 성취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근데 처음 배신 당해야 ‘노력,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며 분개를 하지..
이젠 하도 겪어서 면역이 된다. ㅎ
그치만 한편으론 안다.
이렇게 갈 데까지 가서 후회가 거의 없어지면, 과거에 대한 후회는 덜할 수 있다.
아니면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여지는 있다.

경험 상 무언가를 배운게 시험 끝났다고 몽땅 날라가는건 아니더라.
물론 대부분은 날라가지만 ㅎ.
하지만 나는 절박하게 노력했고, 자격증들 하나하나, 전공공부 하나하나가 나한테는 특별한 의미였으니, 내 안에서 또 다른 추억이 됐다.
그러니, 너무 주눅들지 말길. 좀 더 자신감을 갖길..

남들은 사회생활이 힘들면 취미로 수학의 정석 펼쳐놓고 미분적분 푼다는데..
나는 그렇게까진 못해도 나중에 취미생활로 PSAT 언어 부문 문제는 펼쳐놓고 풀어도 될거 같다.
오랜만에 그거 푸니까 재밌더라고 ㅋㅋ 딱히 공부를 별로 안해도 문제를 많이 맞기도 하고 ㅋㅋ
근데 수리는…. 예.. 전보다는 많이 맞기는 하는데요… 아직도 문제 푸는 시간은 한 문제당 2분 30초를 넘깁니다요.. 예….
이렇게 NCS 공부는 나한테 변태같은 새로운 취미를 하나 만들어줬다.

여튼 내일부터 또 다른 노력을 하러 간다.
내가 이번엔 잘 버틸 수 있기를..
기왕이면 웃으면서 일할 수 있기를.. 이젠 그냥 이것만 바랄 뿐이다.
그냥.. 오늘은 간만에 모든 공부를 다 집어치우고 지난 2년 반의 소회를 적어봤다.
그럼 안녕.

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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