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퇴사하면 퇴사 메일을 보내는 부류의 인간이라, 6년 다닌 회사의 퇴사 이후의 삶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근데.. 지난 며칠동안 멋들어지게 쓰고 싶었던 말은 머릿 속에 참 많았는데.. 막상 쓰려니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긴 하지만..

백수가 되기 직전부터 도서관을 다니며 인강을 듣고 무역영어를 취득하기 시작해서, 국제무역사, 원산지관리사를 땄다.
‘공’자로 들어가는 데는 아무래도 취직하기 어렵겠지.. 그리고 나는 외국어도 좋아했으니까 그 관련일을 하면 행복하지 않을까.. 싶어서 딴 자격증들이었다.
그 이후에는 3개월동안 서울 가서 에듀콘에서 영어를 배웠다. 9 to 5로 영어를 내내 쓴다는건 너무 좋았다.
그 전에 K모 대학의 어학센터와 C대학의 언어교육원, 대전의 영어카페였던 Talkholic을 거치고..
미국인 친구한테 한국어를 가르치며 틈틈이 배운 영어 실력을 내내 써먹는다는게 좋았다..
그 영어 하나 배우기 위해서 일하면서 틈틈이 봤던 영어 원서가 몇권이고, 프렌즈 시즌 1부터 10까지 반복해서 봤던게 몇 년이던가..
뭔가 배운걸 본격적으로 써먹는다는건 힘들지만 재밌었다. 기존에 대학에서 공부만 하느라 못했던 각종 술자리도 재밌었고.. 대학생활을 이렇게 했으면 더 행복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곳이었다.

그 다음에는 한 공기업 시험을 봤는데 NCS 점수를 컷트라인에서 3점을 남겨놓고 떨어졌다는걸 뒤늦게 알게됐다.
결국 연구소의 1년치 보고서와 계약 관련 법률 등을 조사하고 외우고 시험을 풀고 논술을 작성했으나,
그걸 평가 당하기도 전에 NCS 컷트라인을 못넘어서 모든 답안이 폐기처분 됐다.

동시에 한 일본계 기업에서도 최종면접의 문턱을 넘질 못했다.
그 때 한국인 사장과 일본인 사장 둘이 들어왔는데, 한국인 사장이 나에게 비웃듯이 일본어는 할줄 아냐고 물었다.
일본어를 안쓴지 1년이 다되어가는 시점이었건만, 그래도 배운건 머릿속에 남아있었는지 하고싶은 말은 할 수 있었다.
대신에 다른 한국어로 된 질문을 답할 때 표정이 일그러진 것으로 봐서 그게 떨어진 원인이었던 듯 했다.

이력서를 썼고 면접을 부르면 갔다.
백수가 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던 도중에 작은 교통사고가 났다.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나보다 3살이나 어린, 한 여자 공무원이었다. 사고가 나서, 자신의 남편에게 어쩔줄 몰라하며 전화를 했다.
나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낑낑댔지만,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그녀를 본 순간, 그 사람이 부러웠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도 결국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 사람은 나보다 어린데도 안정적인 직장도 있고, 가정도 있었다는게 부러웠다.

여튼 그건 그거고 나는 교통사고를 당한 입장이니까 병원에 치료받으러 입원했는데 면접일이 잡혔고, 취직이 됐으니까 치료도 덜 받고 그냥 출근하러 갔다.
가니까 기존에 해보지 못했던 일,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웠다.
준비했던 자격증과는 거의 겹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관리해야 할 품목들이 수백가지가 넘어가고, 일상적으로 사용해야 할 시스템은 오류가 참 많고..
업무에 익숙해져야 하고 그 사이에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야 하고..

내가 일을 빨리 배우지 못한다는걸 처절하게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인수인계를 받았을 때, ‘왜’ 해야하는지 모르면 내가 그 업무 과정 자체를 외우지 못한다는 것도 뼈저리게 알던 시간들이었다.
업무를 익히면서도, 선임자가 준 인수인계 파일을 붙들고 업무매뉴얼을 내 식대로, 이해할 수 있게 최대한 덧붙이는 작업을 계속했다.
교통사고 때문에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매일 울면서 자정까지 남아있기가 일쑤였다.
전임자가 남긴 일들을 하는게 버거웠다. 그리고 5개가 넘는 프로그램의 수십가지가 되는 기능들을 그래도 원만하게 사용하려면 제품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제품 교육 자체를 받을 시간도 없이 업무에 내던져진것도 이유라면 이유일테지..
한편으론 억울하기도 했다. 난 퇴사할 때 매일 자정~새벽4시까지 남아서 내가 처리할 거 거의 처리하고 나갔는데.. 매뉴얼도 진짜 자세히 만들어주고 나갔는데.. 후임자가 계속 물어봐도 이해될때까지 알려줬는데..
하지만 그건 의미가 없는거다. 왜냐면 이 전임자도 나름 신경 많이 써줘가며 알려준거였으니까. 그렇게 계속 웃으면서 답답한 후임 알려주는게 어디 쉬운 일이었겠나. 그 사람도 힘들었을 터였다.

결국 나는 또 내 특기를 살려서 수백 페이지의 아름다운 업무매뉴얼을 남겨놓고, 많은 임원진들의 칭찬도 받았건만, 코로나 때문에 본사에서 TO 줄여야 하니까 나가달라 그래서 짐쌌다.
짤라서 미안하다는데 어떡하겠나. 미안한건 미안한거고 결과는 결과다. 나는 을도 아니고 병정무조차 안되는 인간이니까 별 수 없지.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그 다음은 2주동안 폐인처럼 지내다가, 어차피 하고싶었던 일도 못하고 어딜 가든 몸을 갈아 넣어야 하는거라면, 이제는 원래부터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공기업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토익도 다시 갱신하고, 경제공부를 처음 시작했고, NCS는 수리를 조져보겠다는 생각으로 PSAT 기본서들을 독파하기 시작했다.

괴로웠다.
경제학자들이 아름답게 경제가 어떻게 잘 풀릴지 딱 잘 토론해서 결론만 나왔으면 좋았으련만, 신고전학파냐, 신케인즈학파냐에 따라서 또 주장하는게 달랐다.
또 미시경제의 재난보조금과 공익형 직불제, 최저임금인상이 어떻게 경제에 영향을 주는지 배우는 것도 벅찼다.
하지만 그러고나서야 처음으로 시중의 경제신문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됐다. 같은 경제현상을 두고,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누군가는 나라가 망한다며 난리를 칠수도 있고, 누군가는 나라를 위하는거라며 칭찬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후반부로 공부할수록 재밌긴 했는데, 근데 대체적으로 이해가 안가서 110강 짜리 강의 보는데 울면서 봤다.
한 강의를 3번씩은 듣고, 내 나름대로 정리하려고 필기를 미친듯이 했다.
하지만 지금도 한 50%정도만 이해 되는거 같다.. 경제학은 정말.. 문과의 브레인이 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경제도 못하고 영어도 못하는가..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을 한탄하며 괴로워했다.

그리고 SRT를 타고 가고 싶었던 곳 중 한 곳의 시험을 보고,
또 PSAT용 NCS 책을 조지고, 또다시 1년치 신문을 조지고, 연구보고서를 조지려고 하던 중, 이번엔 서류에서 탈락한걸 알게된다.
왜지, 왤까, 토익이 900을 안넘어서일까? 아니면 남들은 다 있는 한능검이 없어서일까?
서류에서 탈락하고 나서야 그냥 스쳐지나갔던 ‘한능검, 우대 5%’라는 글씨가 엄청 커져서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 다음은 12월 마지막주에 토익을 시험을 치러 5주동안 절박한 마음으로 시중의 ETS 1000제를 다 풀고 오답정리를 하고, 하고, 또 했다.
LC는 485인데 RC가 400 초반이라 900을 못넘겼으니까.
인터넷의 해커스 모의고사 RC 6개월치를 다 풀고, 오답정리를 하고, ybm 인스타 구독하면서 올라와 있는 팟 5,6 문제를 다 쓸어담고 풀고 또 풀었다.
이번에 못넘기면 공기업 준비는 다 관둬야지, 라고 절박한 심정으로 했다.
8년 전에 960점을 넘겼을 때, RC에서 문법으론 거의 모르는게 없을 정도였다는걸 생각하며, 이정도면 괜찮겠다 안주하지 않고 그냥 계속 했다.

결국 900점을 넘기고, 2월 초의 한능검을 준비했다.
1급이 필요했는데 올해부터 7급 공무원에서도 한국사 대신 한능검으로 대체되어서 서버 폭파되고 접수조차 힘들었다.
근데 어떡함, 나도 점수가 필요한데.
인강을 또 40강을 듣고, 모르는 내용을 채워넣기에 바빴다.
역시 절박했다. 나는 그 ‘한능검, 우대 5%’가 없는 인간이었고, 그거 때문이었는지 무엇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서류에서 떨어졌으니까..
70점 안팎으로 나오는 점수를 보며, 계속 반복해서 오답을 정리했고.. 어처구니없지만 참 다행스럽게도 100점으로 1급을 획득했다.

한능검을 공부하면서 한편으론 NCS의 비타민, 맥NCS를 하면서 계산 시간을 줄이는 연습을 했다.
아무리 NCS를 풀어도, 계산방법을 알아도 시험만 보면 속도가 안나서..
도대체 어떻게 사람들은 한 문제를 1분 30초만에 주파한다는건가.. 너무 괴로웠다.

그리고 토익스피킹 시험도 만료가 가까워져서.. 에듀콘에서 특강으로 들었던 토익스피킹 책을 다시 주섬주섬 꺼내서 3주동안 다시 리뷰를 했다..
당연히 이번에도 토익스피킹 Lv.7이 나왔다.
문법이 좀 틀려서 8은 안나오지만.. 어쩌겠나.. 해외 경험도 없고, 내가 평생 영어만 공부한 사람도 아닌 것을. 일하면서 틈틈히 영어회화 공부했던 게 다일 뿐인데..

그 다음엔 다시 NCS를 하면서 거시경제 리뷰를 다시 하던 중이었는데,
엄마의 병세가 더 악화됐다는걸 알게됐다.
종합병원에서 이제는 수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를 대신해서 가게를 맡아서 하기로 했다.
열심히 요리를 배우고 혼나가며 일을 했다.
하지만 역시 초짜가 몇십년의 일의 속도와 맛을 따라잡을 순 없었다. 여전히 엄마는 가게에 나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험삼아서 봤던 모 기업의 NCS 성적이 상위 10%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을 보러 가도 되는지,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 1달이 걸렸다.
일하면서 그 날만을 기다렸다.
탈락이었다.
부모님의 상심이 컸다.

부모님을 빨리 일을 관두게 하고 싶었다.
그나마 NCS를 주로 보거나, NCS조차 보지 않는 곳으로 계속 서류를 넣었다.

그리고 내일, 출근을 한다.
그치만 결국 ‘공’으로 시작하는 곳은 아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경력으로 인정되는 곳도 아니다.
기존 업무와의 업무 연관성도 없고, 자격증은 쓸모가 없고, 페이가 쎈 것도 아니다. 또 물경력이겠지.

그치만 사실은 무섭다.
일에대한 경험이 마냥 좋았던건 아니어서..
맨날 울면서 야근하고.. 아니면 사람때문에 괴로웠고..
그래도 웃자.
원래 인생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거야.
오늘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내가 쓰는 내 역사는 달라지는거야.


지난 2년 반, 다사다난했다.
쉬웠던 순간은 별로 없었다.
회사는 전쟁터고 나가면 지옥이라더니, 매 순간이 어려웠다.

근데 시간을 돌려서 다시 그 회사에 계속 있을거냐고 물어보면,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엔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는거다.
그리고 경영학에선 그걸 SWOT 매트릭스의 Threat 으로 구별짓는다.
피할 수 없는 위협요소인데.. 그걸 한 개인이 어찌하겠나.
그냥 회색 코뿔소의 위기처럼.. 위험요소가 보여도 ‘괜찮겠지.’하다가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것을..

그렇다고 공기업을 도전한 것도, 성공은 못했다.
절박하지 않은 순간엔 임계치를 넘지 못했고, 절박해진 다음에야 임계치를 넘어서 무언가 성취했지만,
내 역량이 부족해서인지 11개월은 참으로 짧은 시간이었고, 11개월동안 새로운걸 거의 제로베이스에서 계속 성취하는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도전한다는 게 참으로 벅찼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바위가 깨졌나.. 싶으면 또 다른 바위를 깨러 무수히 많은 계란을 던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여러개의 바위들을 깼지… 그렇게 던진 계란이 수백 수천개였고…
저녁 5,6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공부해도 순공시간이 8시간 안팎밖에 안되는 스스로를 보고.. 떠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난 왜 이것밖에 못하는걸까.. 좌절하던 내가 있었다.
원하던 점수가 원하던 기간 내에 안나와서 괴로워하던 내가 있었고..
그리고 나는 무직이 된 채로 1년이 넘어가면 미래가 불안해지고, 초조해지는 스타일이란걸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 스스로한테는 위로해주고 칭찬해주고 싶다.
뭐.. 비록 2년 반동안 계속 무언가를 하느라 인간관계는 다 끊겼지만……… ㅎ
결국 원하던 성취는 이뤄내진 못했지만, 나는 내가 해온걸 알잖아.

노력은 배신을 한다.
살다보니 배신을 하더라고.
노력이란 공든 탑은 무너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요즘은 커리어가 단절되지 않고 한 커리어로 쭉 열심히 해서 성취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근데 처음 배신 당해야 ‘노력,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며 분개를 하지..
이젠 하도 겪어서 면역이 된다. ㅎ
그치만 한편으론 안다.
이렇게 갈 데까지 가서 후회가 거의 없어지면, 과거에 대한 후회는 덜할 수 있다.
아니면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여지는 있다.

경험 상 무언가를 배운게 시험 끝났다고 몽땅 날라가는건 아니더라.
물론 대부분은 날라가지만 ㅎ.
하지만 나는 절박하게 노력했고, 자격증들 하나하나, 전공공부 하나하나가 나한테는 특별한 의미였으니, 내 안에서 또 다른 추억이 됐다.
그러니, 너무 주눅들지 말길. 좀 더 자신감을 갖길..

남들은 사회생활이 힘들면 취미로 수학의 정석 펼쳐놓고 미분적분 푼다는데..
나는 그렇게까진 못해도 나중에 취미생활로 PSAT 언어 부문 문제는 펼쳐놓고 풀어도 될거 같다.
오랜만에 그거 푸니까 재밌더라고 ㅋㅋ 딱히 공부를 별로 안해도 문제를 많이 맞기도 하고 ㅋㅋ
근데 수리는…. 예.. 전보다는 많이 맞기는 하는데요… 아직도 문제 푸는 시간은 한 문제당 2분 30초를 넘깁니다요.. 예….
이렇게 NCS 공부는 나한테 변태같은 새로운 취미를 하나 만들어줬다.

여튼 내일부터 또 다른 노력을 하러 간다.
내가 이번엔 잘 버틸 수 있기를..
기왕이면 웃으면서 일할 수 있기를.. 이젠 그냥 이것만 바랄 뿐이다.
그냥.. 오늘은 간만에 모든 공부를 다 집어치우고 지난 2년 반의 소회를 적어봤다.
그럼 안녕.

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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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치 앞을 알 수도 없는 까만 밤과 같다.

어제는 모처럼만에 10년 만에 다시 만난 옛 영어 선생님과 회포를 풀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밤에 술 기운에 멀뚱히 베란다 너머를 보며, 불과 반년 전에 반년이나 준비한 회사의 서류 탈락 소식을 듣고 죽어버릴까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생각나서 감회가 새로웠다.

오늘은 엄마가 병원에 갔다왔다.
엄마의 병세가 더 심해졌다고 했다.
아무래도 수술은 이제 불가피한 선택인 것처럼 보인다.

엄마를 대전역에 태워주고, 신탄진역에서 픽업하며, 일부러 병원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 지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그냥.. 무슨 말을 들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말의 무게를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아빠의 물음에 찬찬히 답하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결국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작용과 수술 후유증은 엄마를 걱정하게 만드는 지긋지긋한 녀석들이다.
그 1년 동안 엄마는 더 약해졌다.
지난 2년 간, 좋은 명소를 갈 때마다 엄마를 낫게 해달라고 얼마나 많이 빌었던가.
그런 건 아무런 효력이 없었던 것 같다. 잠시나마 이기적인 내 위안이었을 뿐이다. 내 위안.
그리고 그런 행동 자체도 엄마한테 알게 모르게 또 부담을 지웠겠지.
나는 어쨌든 불속성 효자다. 불효자란 얘기다.

엄마는 후유증을 갖고 살지도 모르는 앞 날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기적인 딸년은, 진짜 지밖에 모르기에, 엄마에게 수술을 종용하고 말았다.
1년 뒤에 더 심해지면 어쩔거냐고. 후유증은 생길수도 있지만 안생길 수도 있지 않냐고.. 또 1년 뒤에 더 심해지면, 수술도 못하고 엄마에게 더 손을 못쓰게 되면 그 때는 우리가 후회하지 않겠냐고.
이건 다 지가 안아프니까, 엄마가 아프니까 지랄하는거다. 지 인생 아니라고 막말하는거지.

이제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잘 사는건지,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후회를 덜하는 선택을 하는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인간은 경영학이나 고전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것처럼 모든 정보를 다 아는 합리적인 생명체가 아닌지라, 항상 미래를 모른 채로 그냥 저냥 더듬거리며 가로등도 없는 깊은 밤을 걷기만 할 뿐이다.
후회를 덜한다 생각해도 뒤돌아보면 후회 투성이인게 인생. 당장 내일, 몇시간 뒤조차 모르는게 인생.

10대, 20대 때에는 단순히 사랑, 회사가 힘들다고 징징대는 거였다면..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소중히 여겼던 것들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요즘은 젊은 날에 성공한 연예인들이 부럽다.
그들의 미모, 명예, 인기.. 당연히 안부럽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런걸 다 떠나서 그들이 부러운 이유는.. 적어도 그들은 가족들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부모님 몸에 좋다는거 하나는 더 챙겨드리고, 몸에 안좋은 환경은 바꿀 수 있는 재력이 있다는거..
그냥 나는 그런게 후회스럽다.

어렸을 적, 집에서 엄마와 돈까스를 만들면서 그런 말을 했다.
나중에 어른 되면 엄마한테 맛있는 돈까스 많이 많이 사줄거라고.
근데 현실은.. 모든 게 요원하기만 하다.
열심히 살았다 생각했는데 남는게 없다.

엄마는 나같은 딸을 낳고 길러서 과연 행복했을까?

비가오면 개울가에서 울부짖는 청개구리는 되지 말자 다짐한 게 25년도 더 된 옛날이건만, 나는 청개구리였다.

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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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NCS를 보러다녔다.
옛날처럼 한 곳만 죽어라 팔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보니.. 무작정 이력서를 쓰고 가서 기회가 되는대로 NCS를 보고있다.
근데 NCS만 보는데만 넣는건 아니고.. 걍 전공도 있으면 넣고..

한 곳에서는 NCS가 상위 10%였는데도 면접도 못보고 떨어졌다.
수리영역 하나 빠졌다고 내가 그런 점수를 받는 것도 놀라웠지만, 한편으론 상위 10퍼인데도 면접을 못본다는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느곳에서는 NCS 과목에 정보능력이라 해서 갔더니 코딩을 물어본다.
도대체 왜 경영학 전공자들한테 이런걸 NCS로 묻지? 라는 생각은 들었는데 일단 닥치고 풀기로 했다.
뭐라하면 어쩔거냐.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것도 없는데.
그렇게 최소 80문제중에 10문제를 날려버렸다.

다른 곳에서는 한 영역 당 20문제를 15분 내에 푸는건데.. 자원관리능력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시험 중에 헛웃음이 나왔다.
앞에 두 지문 연계 문제는 일반 NCS 수준보다 쉬웠는데.. 뒤의 두 지문 연계문제는 PSAT 공부하면서도 못보던 완전 생소한 문제들이 튀어나왔다.
앞의 문제들이 쉬워서 빨리 풀고 넘어가는 순간, 모든 의욕을 상실했다. 지문을 아무리 읽고 대입해도 보기와 맞을거라 짐작되는것 조차 없었다. 무슨 난이도가 이렇게 중구난방인가 싶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중간이 없네.
시험이 10분 남았는데 나머지 10문제는 개뿔 계속 봐도 감도 안잡히고..
다음 영역은 그냥 망했다. 앞에서 절반을 찍어서 모든 의욕을 상실해서 걍 집중이 안됐기 때문이었다.
앞에서의 패배감때문에 어차피 안될거라 생각하니 문제를 빨리 읽지도 못하고.. 그러니 당연히 풀이속도는 느릴 수 밖에 없었다. 리딩속도조차 느려졌는데 잘 될 리가 없지.

이때까지 위포트,해커스 수리,자원관리 NCS용 PSAT 실전서는 다 1회독씩 조지고 들어갔는데 이게뭐지....
왜 듣도보도 못하는 유형이 나오는거지..

그나마 다행인건 보기가 5개일때보다 4개일 때 개당 문제 풀이 속도가 빨라지긴 하는거 같다.
PSAT용 문제 풀면 제한시간보다 2배는 더 초과하는데 실제로 시험장에 가면 그거보단 빨리 푸는거 같다는느낌이 들긴 한다..
그리고 딱 봐서 완전히 접근방법조차 모르겠는 문제의 수도 줄기는 했다. 긴가민가한건 아직도 많지만..
그래서 오늘 더 멘탈이 터졌던걸지도..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문제집 풀면 아직도 한 문제당 풀이시간이 3분 30초에서 4분정도 걸린다.

근데 이런식으로 문제출제할거면 NCS보고 국가직무능력표준이라 하지 마라..
뭔놈의 표준이 기관마다 난이도도 다 다르고 한 문제지에 같은 영역 내에서도 난이도가 극단으로 갈리냐.. 중간이 없어요 중간이..
하지만 나는 을도 아니고 병,정,무 조차 못되는 인간이라 그냥 체념해야겠지.. 오늘도 피곤하다.

일단 올해의 목표는 틈틈이 PSAT용 책을 조지는걸로 해야겠다..
근데 남들은 PSAT용 책을 20권을 풀었다는데 그걸 어떻게 풀었다는건지 모르겠다..
시중에 NCS용 PSAT으로 나온게 위포트랑 해커스꺼만 다 합쳐도 6권밖에 안되는데..
다들 민간경력자용이나 국가직7급, 5급용도 다 훑는걸까.. 그런식이면 곤란한데.. 나는 언제 다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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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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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입버릇이 있지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행복해지고 싶다’라는 말.
하지만 사실 인생에 있어서 행복의 시간을 찰나일 뿐, 대부분의 시간은 인고의 시간을 겪어내는 데에 지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잘 짜여진 소설이나 영화, 만화가 아니니까.
심지어 하다못해 소설도 주인공은 역경과 고난을 오지게 받는다.
일례로 해리포터 같은 경우는 1학년때부터 7학년때까지 매년마다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긴거니..

하지만 소설과 인생의 차이점은,
소설은 결국 주인공이 노력하면 성공에 이르지만, 현실은 그럴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행복해지는건 그만두기로 했다.
인생에 완벽한 때라는건 없다.
픽션에서는 영웅은 세상을 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고, 사람들의 환대를 받는다.
공주는 왕자님과 만나서 행복하게 평생 산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젊어서는 다이어트와 외모, 취업, 부족한 돈 때문에 고통 받고.. 나이가 들면 노화현상과 건강 때문에 고통 받고..
결혼이나 연애는 해도 고민, 안해도 고민.
아이는 키우면 힘들고 돈이 들지만 같이 있으면 행복하고..
직장도 있으나 없으나 만사 괴로울뿐..
세상에 완벽하게 행복한 때라는 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그만하고 싶어졌다.
완벽한 행복이라는건 평생을 살아도 불가능한거니까.
그래서 그냥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걸 목표로 삼기로 했다.
굳이 행복이라는 불가능한걸 목표로 삼지 않기로 했다. 이뤄지지 않는건 아무리 노력해봤자 힘만 든다.
대신에 내 인생의 특정 순간들에 어떤식으로든 의미부여를 하기로 했다.
이건 소설도 아니고, 나는 작가도 아니지만, 어떤 사건에 대해서 내가 의미부여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의미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건 상관없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내 이야기고 내 인생이니까.
그래서 이제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줄이기로 했다.

뭐, 좀 안행복하면 어때.
사람이 안행복할 수도 있는거지.
꼭 행복해야만 하는건 아니니까.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지지 않는다.

오늘 하루도 끝나서 다행이다.
일단 우리 가족 다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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