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일단 좋은 소식은, 엄마가 마침내 수술을 받았고, 패혈증 같은 부작용은 없다는 것이다.
안좋은 소식은, 수술 받은지 거의 3주가 다되어 가는데도 폐활량이 잘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12월 한달동안은.. 엄마가 수술 후에 실밥을 풀기까지, 주말에는 공부도 안하고 전전긍긍하면서 기다렸다.
엄마가 괜찮을까 싶어서..

엄마가 수술받는 주에는 평소에 안가던 성당도 자주 가고..
너무 불안해서 엄마의 수술을 일부러 잊으려고 노력했고..

12월 마지막 주에는.. 원래 월말에 업무가 몰리니까.. 몰리는 업무 하고..
업무적으로 트러블 생겨서 결국.. 이 회사도 입사한 지 반년만에 내 본성이 드러나게 됐다.
힘들고 지치면 차마 숨기지 못하고 다 티나는거..

아무리 남들에게 지인씨는 부정적이지 않다고 들으면 무얼 하나.. 결국은 똑같이 돌아갔다.
나는 역시 사람 상대하는게 제일 어려워..

벌써 2022년 1월이 시작됐다.
올해에는 옆에 쌤이 육아휴직 1년을 들어가고..
나는 또 아무것도 모르는 누군가와 같이 일하면서 또 3~6개월을 고생해야 한다.

팀장님은 술자리에서 그런 말을 했다.
지인씨가 들어온 자리가 그런 자리라서.. 자기가 임금을 더 주거나 승진을 시켜줄 수는 없지만.. 지인씨의 일의 그릇이 커질 수 있게 다양한 일을 줄 수는 있어.
우리 팀에서는 인정을 해줄게..
본인의 역량을 본인의 자리에 한정짓지 마.. 라고.

그건.. 어쩌면 인어공주가 되라는 말 아닐까..
‘열심히 하도록 해.. 열심히는 하는데.. 그냥 그림자 속에 있어. 무언가 해낸다고 해도 눈에 띌 순 없고, 물거품이 되도록 해..’ 라는..
승진을 못하고, 임금이 크게 오르지 않는데.. 그릇만 커진다면 어쩌면 본인만 괴로운게 아닐까.
가지지 못하는걸 원하는건.. 본인만 괴롭잖아. 그게 열정페이인거고..

엊그제는 같은 팀의 동갑인 상사가, 회사의 윗분들을 모시고 성공적으로 프리젠테이션을 끝내고 돌아와서, 많은 팀원들의 축하를 받았다.
나는 그놈의 사직 일자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시달릴동안, 누군가는 한걸음 더 인정 받고 있었다.
물론 그 사람도 그 일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무언가를 열심히 했을 때, 성과를 인정을 받냐 못받냐는 또 다른 문제잖아. ㅎ.

도대체 몇 해를 살아도 이런 짓을 반복해야 하는건지..
이젠 좀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하.. 나도 시험 준비해야 하는데..
정규직이 아니라서 너무 서럽고 또 서럽다.
회사생활은 사실 일보다는 사람이 좋으면 더 잘 다닐 수 있다는건 알지만.. 사람이 좋아서 계속 머물다가.. 사람 물갈이되면서 6년다닌 곳에서 쫓겨나듯 나온 적이 있어서..
그리고 이제는 사람이 좋은 거인지도 잘 모르겠다.. ㅎ
반년 지나니까 슬슬 장단점이 보이고 있어서..

어차피 시험은 올해까지만 준비할거야..
더 이상 토익 900점 넘기려고 공부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
사람들 사이에서 시달리고.. 월말이라 일 더하는 와중에 공부해야 하다니..
남들은 쉽게 따는 전산회계 1급도.. 지난 반년동안 NCS랑 내 전공도 아니었던 다른 전공시험 준비랑 병행하느라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결국 따지도 못했는데..


내 취미이자 꿈이었던.. 외국어 공부를 못한게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현실에 치이느라, 다른 자격증을 준비하느라, NCS도 준비하고.. 앞으로 또 다른 전공시험을 준비하려면..
이렇게 벅차고 힘든 인생을 언제까지 버텨야 할까..
버틴다고.. 달라지긴 할까..

아냐, 실패해도 의미는 있어. 그 자체로도..
외국어도.. 다시 하면 되지..

지금 내 버킷리스트는.. 35살 1월 첫째주에 나 혼자 근사한 호텔을 잡아서 호캉스를 하는 것이다.
34살까지 준비해보고.. 안되면.. 이제는 그만 해야지..
10년 넘게 결국 내가 원하던 큰 성과에 도달하지 못한 채로 계속 무언가를 하는거.. 이젠 너무 힘들고 지친다..

31살의 나도, 일도, 사랑도, 건강도, 가족의 건강도… 다 힘들었는데..
34살을 시작하는 지금의 나는.. 역시 일도 약올리듯 더 받기만 하고, 발목 인대는 3년이 지나도 이젠 더이상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가족의 건강은 여전히 안좋고, 사랑은.. 뭐 말할것도 없고..
여전히 엉망진창이다.

그래서 34살까지 열심히 해보고, 더 이상 안되면.. 이제는 현실에 순응해서, 더이상 열심히 하지도 않고, 그냥 퍼져서 살아보려고..
나는 이제 너무 지쳤어..
내 기대를 충족시키려 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려는 것도..


다음 생애에는 어딘가의 집시처럼, 감히 남의 인생도, 내 인생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내가 내키는대로 술먹고 노래하고 춤추고, 여행다니면서 즐겁게 살다가 어느 날 죽어버리고 싶다.

어쨌든, 2022년 1년의 목표는.. 일도 잘 하면서, 올해를 마지막으로 젊은 시절에 했던 모든 공부를 끝내는 거..
좋은데 취직하려고 4년동안 아싸로 지내면서 그토록 아등바등했던 대학생때의 김지인이 너무 불쌍하고..
외국어 쓰려는 일을 하려고 10년동안 외국경험 하나 없어도, 영어, 일어 공부하면서.. 각종 매체 셰도잉하고.. 외국인 친구한테 한국어 가르치고.. 타지에서 외국어도 배워보고.. 외국 팟캐스트도 듣고..
그렇게 설레여했던 김지인이 너무 안쓰럽고..
이번엔 진짜 꿈을 쫓아보겠다고 몇년동안 다닌 직장 때려쳤던 김지인이 너무 대견해서..
그래서 이젠..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하려 한다..

실패를 해도 그것도 인생이니까 받아들일 수 있을거고..
성공을 하면 당연히 좋은거니까.. 새로운 곳에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면 돼..


이러면.. 남들처럼 연애하고 결혼하는건 이제 포기해야겠지만..
설령 그런다 한들.. 이젠 상관 없어.
어차피 35살이 시작되면.. 이때까지 해온 것들 때문에 너무나 지쳐서.. 그런게 눈에 보일리가 없다..
스스로나 잘 다독이며 살아가야지..

올해엔 어떻게든 끝장을 보자.
그 끝이 설령 낭떠러지더라도, 나는 결말을 봐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이건 내 인생이니까.

Posted by 지인:)
,

결국 합격선에서 약 1.5점 내외의 차이로 필기에서 떨어졌다.
사실 필기시험 결과에는 최종 합격자 컷트라인만 나오고 내가 실제로 몇 점을 받았는지는 나오진 않았지만..
나는 NCS 책 몇권 풀면서 가중산술평균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ㅎ
그런거는 계산해보면 대략적으로는 알 수 있다.
점수를 보아하니..
NCS는 2년 전보다는 6문제 정도 더 맞았다.
60개 문항 중에 40개 언저리는 맞았으니..
내가 이 때까지 NCS용 PSAT 문제집을 6권을 풀었는데..
1권 당 1.67점씩인가.. 싶어서 조금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그래도.. 작년에 NCS 공부 처음 시작했을 때는.. ‘내가 이걸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라고 생각했었는데..
PSAT 수준으로 나온 문항에도.. 어쨌든 예전보다 더 많이 맞는걸 보면서..
조금의 위안은 됐다..

상식,전공은 예상대로 진짜 딱 5개 틀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쩐지.. 모르겠는건 아예 모르겠더라니..
회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안찾아보고가 이렇게나 차이가 크다고? 라며 혼자서 새삼 놀라워했다.. ㅋㅋ ㅠㅠㅠㅠ

논술은.. 생각보다는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근데.. 사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번에는 시험 막판에 부랴부랴 준비한거 치고 잘나온거기도 했다. ㅋㅋㅋㅋㅋㅠㅠㅠㅠㅠㅠ
그래도 나름 농업에 관해서는 2년동안 비벼본 짬바가 있다고 생각했는디..
결국은 안되브렀구먼.. ㅎ ㅠㅠㅠㅠㅠㅠ


여튼 그래서 합격선에 1.5점 부족한 점수로 탈락했습니다.

왠지 불합격하면 또 우울할거 같아서.. 어제는 내가 갖고 있던 옷 중에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옷을 입고 회사를 갔다.
6시가 넘어서도 결과가 안나오길래.. 2년 전처럼 저녁 8시에 결과가 나오나.. 싶었는데..
6시 10분이 되어서야 결과가 나왔다.

뭐.. 그치만 사실 아무리 혼자 계산을 하고 쌩쇼를 해도 불합격인 사실은 변함이 없다. ㅎ
그치만 2년 전에는 NCS에서 떨어져서 모든 상식, 전공 시험 점수가 채점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폐기처분 됐었는데..
이번에는 결과가 나와줘서 감사했다.
무언가.. 조금은 더 납득할 수 있었다.
일단 올해는 이거면 됐다.
시험도 쳤고, 어쨌든 결과도 나왔으니..
갑자기 이 시험 준비한다고 그 전날로 예정되어 있던 가족여행 싹다 취소하고 본 시험이긴 하지만.. 암튼.. ㅋㅋㅋㅋ ㅠㅠㅠㅠㅠㅠㅠ



그 결과를 보고 어제는 회사에 남아서 잔업을 했다.
월말이라 마감해야 하는 업무가 있어서…
외부에서 업무를 끝낸 과장님이 저녁에 돌아왔다.
나한테 여러가지 조언을 해줬다.

그 중 하나는.. 자기 전에 오늘 있었던 일 중에 행복한 일을 하나 생각하고 자라는거..
매일 매일의 사소한 행복이 쌓이고 쌓여서, 본인의 자존감이 되는 거라고 했다.
자존감이 곧 행복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내가 지난 10년동안 몸으로 부딫히며 간신히 막연하게나마 느끼기 시작한걸.. 이렇게 명쾌한 말로 듣자니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심리상담사의 칭찬,감사 일기 이야기와 결이 비슷한 말씀을 하시길래.. 역시 기분이 이상했다.
그냥.. 조금은 많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한테 그러셨다.
긍정적으로 살라고.

그래서 내가 웃으면서 ‘제가 혹시 부정적으로 보이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거냐 ㅎㅎ’라고 물었더니..
지인씨 부정적으로 안보인다고..
지인씨는 본인이 내성적이고 부정적이라고 말은 하지만..
옆에서 지인씨를 봤을 때 충분히 사람들과 친화력 있게 지내고 있고 부정적이지 않다고..
‘자네, 꽤 괜찮은 사람이야.’ 라고.

그치만 긍정적으로 살라고 말하는건..
지인씨가 오늘을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라고..
아무리 현실이 힘들 때가 오더라도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으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문득문득 지인씨가 지난 회사생활에서 힘들었다는걸 얘기하길래 말해봤다고..
오늘 하루에 딱 1가지 감사한걸 생각하며 잠들면, 조금 더 기분이 나아질거고..
앞으로 3년, 5년 후의 내 미래를 그리면서.. 그 사이사이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더라도.. 조금은 캐쥬얼하게 희망을 품고 살면 행복해질거라 해주셨다.
조금은 허황되어보이는 미래라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그린 그 3년, 5년 후의 미래가 꼭 그 모습 그대로 실현되지는 않더라도..
결국 꿈을 마음 속에 그리면 어느 순간 닮아간다고..
그렇게 마음에 희망을 품고 사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 얘기를 듣고.. ‘뭐지.. 프랭클린 다이어리에 있는 말이랑 비슷한데..’ 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ㅋㅋ
역시..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성공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건가? 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고..
덧붙여 과장님은, 사람은 사람인지라,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게 더 쉽지만.. 그럼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노력을 계속하다 보면,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될거라는 말을 해주셨다.

기분이 좀 많이 이상했다.

똑같은 ‘긍정적으로 살아’라는 말에도,
누군가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방법을 제시해주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힐난하듯 말하는 사람이 있다.
작년 상반기의 나는, 왜 너는 긍정적으로 살지 못하냐라며, 나를 힐난하기만 하는 사람들 한 가운데서 매일 힘들었었는데..

오정세 배우가 동백꽃 필 무렵에서 조연으로 출연해서 상을 받았을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했다.
자신은 몇 백편의 작품을 하면서 매 순간을 열심히 작업했다고..
그 중에는 잘 안된 작품도 있었고.. 잘 된 작품도 있었다고..
그치만 그 작품 중에 자신이 열심히 하지 않은 건 없고, 본연의 모습으로 매 순간 열심히 했다고.
제가 동백꽃 필 무렵이란 작품으로 결국 상을 받았듯이, 시청자 여러분에도 여러분만의 동백꽃이 언젠간 필거라고..

나는 예전에도 김지인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김지인인데..
똑같은 김지인일 뿐인데 누군가에겐 배척당해도 누군가에겐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한다는게 조금은 이상했고, 사실 많이 감사했다.

나는 한 평생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더 갈고 닦아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이대로의 나도 충분히 괜찮은 자질을 갖고 있다고..
그 좋은 자질로 앞으로 희망을 품고 더 살아보자고..
다시 한 번 다짐을 했다.

그러니, 앞으로는 조금 남들한테 안좋은 소리를 듣더라도 그냥 흘려보내야지..
나는 좋은 자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상으로 오늘의 행복 한 조각이자 감사일기였습니당.


-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르는 것 투성이라 생각한다.
작년의 나는, 같은 회사에 탈락했을 때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고 기약 없는 이 짓을 반복해야.. 취직을 하고.. 남들처럼 가정을 꾸린다는 그 ‘보편적이지만 행복해진다는’ 기준에 가까워질 수는 있을지.. 많은 낙담을 했었다.

어제의 나는, 또 같은 회사에 탈락했지만, 그래도 결과가 눈에 보인다는 것에 감사했고.. 과장님의 조언에 더 감사했고..
뭐 사실 좋은 말씀해주셔도.. 그 한 켠에는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일 잘해라 노예야 ㅋㅋ’ 이런 맥락도 아예 없진 않을건데..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에도 부하 직원에 구체적인 방법을 어느 정도 제시해주고 ‘네 길을 찾아라’라고 해주는 상사는, 내 경험 상 의외로 사회에 별로 없다.
다들 던지고 알아서 해주기만 바라고 내 결과가 그들의 기대치에 못미치면 화내는 사람들이 많았지..

어쨌든.. ‘자네, 꽤 괜찮은 사람이야.’ 라는 말은 조금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참..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단짠단짠이네.. ㅎ

Posted by 지인:)
,

저번주 일요일에는 내가 작년과 재작년에 그토록 가고 싶었던 회사의 필기시험을 보러 갔다.
이번에는 어떻게 서류에 붙게 되었다.
토익 900을 넘었던게 효과가 있었을까.. 아니면 한국사가 도움이 됐던걸까..
어쨌든 서류를 붙어서 필기시험을 보게 됐다는 데에 의의를 두었다.
시험 장소는 2년 전과 같은 학교.

2년 전에 비해서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는게 조금은 어색했다.
2년 전에는 많은 직원들이 나와서 시험 잘보라고 수험생에게 음료와 응원을 해줬었는데..
이번에는 여타 다른 회사들과 비슷하게, 문진표 제출하고 시험보러 올라갔다.

인성검사를 풀고, 2년만에 이 회사 NCS를 다시 접하게 되었다.
재작년에는 여기서 떨어져서 다른 문제를 보기도 전에 폐기처분 당했지.. 이번엔 잘하자..
라고 생각하고 페이지를 넘기면서..
‘아, 망했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NCS책을 PSAT용으로 6권을 풀었어도.. 역시 답이 안나오는 문제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문제들이 많았다.
한 절반정도 풀고 있는데 5분 남았다고 해서.. 나머지는 그냥 다 찍었다.

다음은 상식,전공 문제였는데..
재작년에는 국립도서관에 있었던 그 회사의 1년치 사보를 보면서 준비하느라 비교적 쉬웠던거 같았는데..
올해는 미처 준비하질 못해서.. 문제지를 보는데 잘 모르겠는 문제들이 좀 나왔다.
한 5문제 정도였던거 같은데.. 5문제면 누군가는 붙고 누군가는 떨어질 정도겠지..
다른 수험생들도 다 풀고 엎드려 있는걸 봐서는.. 진짜 누가 더 아냐 모르냐의 싸움이 될 거 같았다.

마지막으로 논술문제를 보게 되었는데..
의외로 진짜 무역 문제가 나오는구나.. 싶어서 놀랐다.
기존에는 이런 문제가 안나왔던거 같은데.. 싶었는데 조금 의외였다.
올해는 KREI 보고서도 너무 급하게 보느라..
막판까지도 프린트 한거 보고 또 보느라..
문제를 본 순간, 농업관련 이슈로 쓸까.. 무역 관련 이슈로 쓸까.. 조금 고민했는데..
경제신문을 챙겨봤던게 올해 3월정도까지였어서..
그냥 막판까지도 봤던 KREI 보고서를 바탕으로 농업관련 이슈로 논술을 썼다.

그래도.. 지난 2년동안 이 회사 준비한다고 2,3달 정도 KREI 보고서들이랑 농민신문을 몇백 페이지 가량 봤던 짬이 있어서인지..
2년 전보다는 확실히 논술에서 쓸 말이 더 많았다.
재작년엔 내가 글을 쓰면서도 ‘이게 말이 되나?’ 싶어서 계속 글이 딱 떨어지지 않고 중언부언만 반복하고 시간이 부족했었는데..
이번엔 내가 글을 쓰면서도 ‘어쩌면 이게 말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시간 내에 했다, 라는 느낌이었다.


시험이 끝난 뒤에는 5시가 좀 안되어서..
오랜만에 간 김에 명동에 들러서 명동 성당에 갔다.

3,4년 전에 새벽 6시에 명동성당에 갔던 길은, 조금 많이 무섭고 쓸쓸했다면,
이번에 간 명동성당은, 사람도 북적북적하고 사진을 찍으려던 한국인 커플들도 많았고..
왠지 따스하고 반짝반짝한 느낌이었다.

이번에 미사를 참석하면서..
그래도 드문드문 유튜브로 매일미사 프로그램을 봤던게 도움이 됐구나.. 싶었던게..
예전에는 기도문을 따라할 때, 뭔가 남들이 하는 말을 잘 못알아 들어서.. 기도문 중에 알아듣는 말만 조금 따라하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그 때보다는 조금 더 따라할 수 있었다.
조금은 기뻤다.
미사를 참석한 이유는.. 뭐.. 이 회사에 붙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러 간거는 아니고..
내가 인생에서 힘들었던 시기에, 처음 명동성당을 갔던 어느 날,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평화를 빕니다’라고 인사했던 기억이 너무 좋았어서..

이번에도 어색하게 신도들 사이에서 ‘평화를 빕니다’라고 인사를 하는데..
조금은 더 감사했다.


간만에 주말에 공부를 하지 않고 어딘가를 돌아다닌다는게 너무 좋았다.
비록 몇 년만에 다시 간 명동은, 예전보다는 외국인 관광객이 없고..
한국인만 길거리에 드문드문 있고..
지나가면서 몇몇 식당과 카페들이 ‘일요일 저녁 8시인데 문을 닫았네.’라고 할 정도로 문을 닫기도 했고..
많은 길거리 음식들이 사라졌고..
대신에 오징어 게임의 인기로 인해서 달고나를 1개당 1,000원에 파는 노점이 좀 생겼지만.. (…서울물가 개비싸다..)
그래도.. 이런 명동을 보는 것도 지금 한 철이리라..
미래에는 또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외국인으로 북적이겠지.

예전에는 특정 장소에 가면 항상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시기에, 그 장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공간이라도 ‘언제’ 가냐에 따라서 풍경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
단순히 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바뀐거든..
아니면 사회문화적인 이슈로 인해서 바뀐거든..
아니면 원치 않았던 코로나 같은 팬데믹 같은 이슈로 바뀐거든..

하지만 누군가한테는 생계이고, 실례될 수 있는 말일 수도 있으니..
여기서 그만 말을 줄일까 한다.


앞으로 12시간 내외로 이 때 본 시험의 결과가 나온다.
페이는 많이 적어도, 그래도 꼴에 직장이 있다고.. 굉장히 낙담하던 작년과는 다르게.. 올해에는 그냥.. 조금은 더 무덤덤한 느낌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마냥 천국은 아니고.. 괴로운 점도 분명 있지만..
그래도 같이 다니는 사람 자체는 조금 좋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서 그런가..

그래도 제일 첫직장 때 으쌰으쌰했던 동료들이 제일 그립다.
이제는 그 팀도 없고.. 다들 뿔뿔이 흩어졌으니까 돌아갈 수는 없고..
내가 알던 그 회사는 이젠 이 세상에 없으니..
내가 그리워하는 건 실체가 없는 것 뿐인지라..
그리움은 그리움으로만 남겨두기로 했다.

살아남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계속 변해야 하니까..

내년 이맘 때쯤엔 나는 어디서 무얼 하게 될까..
또 앞으로 1년을 어떻게 지내야 할까..

하긴, 당장 12시간 내외의 미래도 모르는데..
어떻게 1년 뒤를 알 수 있겠어 ㅋㅋ
내가 지금 할 수 있는건.. 목표를 세우는 것과 행동하고 분석해서 개선해야 하는 것 밖에는 없다.
미래를 모르는 한낱 인간일 뿐인지라.. ㅎ

몰라.. 이래놓고 이따가 결과 또 탈락 나오면 격분해서 블로그에 글 쓸 수도 있지 ㅋㅋㅋㅋ
다음에 또 두고 봅시당.
일단은.. 또 이번주를 시작해야 하니까.. 여기서 이만 총총총

Posted by 지인:)
,

새로 들어간 회사는.. 드디어 100일이 넘어갔다.
이번에도 혹시 짤리는게 아닌가 싶었지만.. 다행이도 짤리진 않았고.. 계속 하게 됐다.
하지만.. 처음에 칼퇴했던게 무색하리만큼.. 또다시 야근 야근 야근.. 나만 야근..

이제는 내가 야근을 버는 타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야근을 해도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승진을 할 수도 없는 곳..
의미 없다는거 아는데도.. 일이 눈에 보이면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고.. 잔실수 없이 잘해서 남들에게 안좋은 소리 듣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너무 커서..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래도 아직 1인의 역할을 하는건지는 불분명해서..
일을 할 때 자꾸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건.. 팀원들이나 팀장급이 안좋으면.. 이번엔 길게 끌지 말고 다시 관두려고 했는데.. 그러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내 상사는 나보고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잘 다독여주라고 했다. 잔실수 조금 해도 괜찮다고..
물론 원래부터 사무직이었던 내 입장에서는, ‘저건 잔실수가 아닌데요.. 돈 관련된건 욕먹기 딱 좋은데요..’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래도 꿀꺽 삼켰다.
되게 모처럼만에 듣는 감사한 칭찬이었으니까..

작년 초에 이직했을 때, 쥐뿔 아무것도 모르는데 나 혼자 다 책임져야하고.. 맨날 야근하고 주말출근하고..
한번에 왕창 일 알려주는 바람에 일부 업무 프로세스를 누락시켜서 인수인계 해주고나서는..
그마저도 현재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일들을 잔뜩 넘겨준 바람에 매일같이 울면서 허우적거리는 나한테..
회사 전체가 한마음 한뜻으로 ‘쟤 스펙 좋아서 뽑아 놨더니 상태 왜 저래?’라고 면전에다 대놓고 말하는걸 경험해서 그런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말이 도저히 적응이 안된다.
그치만 진심으로 감사했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또 있구나..

근데.. 그래도 힘들긴 힘들다..
결국 첫 연차를 입사한지 100일만에 이번주에 써버렸다.
공원에서 경치 보면서 멍때리고 있는데.. 진심으로 너무 행복했다.
그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도 결국 사람에 시달리는 일을 하는거니까..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얼굴도 모르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거고.. 이제는 얼굴도 이름도 다 아는 특정인원을 상대해야 하는데..
혹시라도 심기를 거스르진 않을까 항상 살얼음판을 딛는 느낌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느낌이라 외로웠다.
이제 더는.. 나에게 있어서 예전의 서로에게 으쌰으쌰하는 회사와 팀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 뿔뿔이 흩어진 예전 우리팀 동료들이.. 막상 이직하니까 이질감에 힘들어하는지.. 요즘 온 몸으로 부딫혀가며 절실히 깨닫는 중이다.
너무 외롭다..

여러가지 긍정적인 마음과 부정적인 마음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요즘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이제는 조금의 감사함이라도 겪을 수 있다는거. 그게 다 어디냐..
나는.. 작은 감사함같은 것조차 무척 그리웠나보다.

Posted by 지인:)
,

요즘은 버스로 편도 1시간 반을 이동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에 잠깐 있었을 때, 경기권의 애들이 서울까지 오느라 1시간, 1시간 반 버스를 타고 다니는걸 보고..
어떻게 저렇게 아침일찍 일어나서 이 시간에 맞춰 오는걸까 의아해했는데..
그 비슷한걸 하게 됐다.

요즘은 새벽 4시 전후로 일어난다.
아침에 일어나서 1시간 회계공부를 하고, 5시반부터 부지런히 씻고 화장하고 옷을 입으면 7시가 된다.
그러면 부랴부랴 출근해서 8시 반까지 회사에 도착한다.

지난 한달 반동안은 평온한 일상을 보냈다.
대신 월급도 지난 회사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이번에 느낀 것은.. 사람에게 워라밸이란 너무나 중요한 요소라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가 적다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원할 때 사지 못한다는 것임을 뜻하는걸 배웠다.

지난 한달 반동안 야근다운 야근을 한게 손에 꼽았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을 하고 출근을 하는게 이상하리만큼 힘들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항상 웃으면서 사람들을 대할 수 있었다.
가끔 내가 못하는 일 때문에 좌절을 하기는 했지만…

33살에 어쩌다보니 다시 막내로 돌아가는 생활이 되기는 했지만,
게다가 이제는 여기에 계속 있다면 잡일만 하다가 내 일생이 끝나긴 하겠지만..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방글방글 웃으면서 화장까지 매일 해가면서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사람이었나..
새삼 놀라웠다.

6년 다닌 회사를 뒤로하고 나올 때, 새로 바뀐 팀장으로부터 ‘너 어디가서 그렇게 화내면서 회사생활하지 마라’라며 면전에다 대놓고 욕먹다가 얼마 안가서 퇴사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이직하고 3개월을 또 다닐 때, 매일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눈물로 잠들었던 적이 있어서 그런가..
기분이 이상했다..
한달 반동안 화가 이렇게 많이 안날 수 있다니..
오히려 방글방글 웃을 수 있다니.. 왜지..
아직 메인롤이 없어서인가..
하지만 단순히 그렇다기엔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은 되게 바빠보이는데도 큰소리를 안내면서도 사근사근하게 의사소통을 하는걸 보고 너무 신기했다..

참.. 내가 오래 산건 아니지만 별 일이 다 있네..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다..
회사가 직장인에게 있어서 유토피아가 될 수는 없다.
분명 시간이 지날수록 본성이 드러나고야 말 것이다.
원래 초반 3개월은 허니문 기간이라고 해서.. 신입과 회사가 서로 탐색하는 기간이니까..


하지만 반면에 너무나도 작아진 월급을 보고 착찹한 마음도 들었다.
3년 전부터 너무나도 사고 싶었던 가방이 하나 있었다.
그 당시에는 퇴사 후, 얼마 안되던 시절이라, 마음이 조급했고, 어차피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하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오늘, 우연히 가방 가격을 찾아보다가.. 내 월급을 비교해보고 조용히 인터넷 창을 닫았다.
40만원조차 안되는 가격이었는데도.. 부담이 되어서 차마 결제를 할 수가 없었다.
참.. 한편으로는 착찹했다.. ㅎ


일에 대해서는..
예전의 일과 비슷한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다.
그런데 한가지 놀라운건.. 더이상 외국어를 쓸 기회는 아예 없다는거..
지난 한달 반동안 외국어를 쓸 일이 단 한번도 없었고, 이 자리는 원래 그런 자리라서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납득했고, 요즘 같은 세상에 감지덕지하며 다니고는 있지만..
어느날 우연히 회사 근처 무인 편의점에서, 내가 모르는 회사 정직원과 외국인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걸 옆에서 보고 있자니, 갑자기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아무래도 아직은 포기가 안되나보다..
하긴.. 내 20대부터 30대 초까지 거의 10년동안 외국어는 내 취미생활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포기가 되면 그게 이상한거겠지.. ㅎ

그나마 다행인건.. 칼퇴가 가능하니까 6시에 퇴근하면 근처 카페가서 밤 9시까지 공부하는게 하나의 낙이 되었다.
요즘은 어처구니없게도 전산회계 1급을 공부하는 중인데..
계기는 한국조폐공사 지원할 때, 가산점에 전산회계,세무가 들어가 있는걸 보고 충격 받기도 했고..
입사 첫 날에 우리 팀의 대빵으로부터 ‘자네 회계는 좀 할줄 아는가?’라는 질문을 받아서이기도 했다.
공부를 하는건 어떻게보면 진절머리가 나긴 하지만..
너무 친구없이 혼자였던 시간도 길었고..
회사에서 방글방글 웃으면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면.. 나 혼자 고요하게 지낼 시간이 절실히 필요한데..
아이러니하게도 공부가 위로가 되어준다.
적어도 책은.. 사람 뒷통수는 안때린다.
내용이 이해가 안되어서 내가 빡칠수는 있어도.. 내가 책의 비위를 맞춰주느라 신경쓸 필요도 없고..
책 앞에서는 굳이 내가 타인에게 긍정적인 척 안해도 되는 것도 좋고..
책은 언제라도 펴면 어색한 기류 하나 없이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는게 좋다.
그래서 요즘엔 그냥 내 본연의 모습으로, 책 내용이 이해가 안되면 빡쳤다가.. 이해가 되면 좋아하고.. 그러고 있다.
하.. 공부를 10년 넘게 하니까 이젠 이런 변태같은 지경에 이르렀네.. ㅎ
인생.. 참 모를 일이다.
나는 원래 공부하는게 싫었는데.. 근데 사회생활이 더 싫엉….. ㅠ

부모님은 가게를 내놓으셨지만 요즘같은 킹시국에 가게가 언제 넘어갈지는 요원한 상태이다.
그래서 주말 중 하루는 가서 작게나마 도와드리고 있다.
대체적으로는 회사 다니면서 일어나는 재미난 일들을 말씀드리고는 있지만..
가끔 부모님의 잔소리가 한소리씩 얹어진다.

아빠는 말했다. ‘너 이제와서 회계 자격증 따봤자 소용이 없어. 네 나이 또래는 이미 과장급인데 니가 어쩌려고 그래.’
엄마는 말했다. ‘너 도대체 이러다 일평생 공부만 하다 끝날거 같다. 언제 젊음을 즐기려고 그래.’

아.. 또 마음이 아프네.. ㅎ
20살때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학창시절에 내성적이어서 받았던 상처는 생각도 안하시고.. 학교 공부만해서 소용이 없다.. 좀 동기들이랑 어울려라..
공무원 준비를 해라.. 휴학은 절대 안된다.. 취직이 안되면 대학원에 적을 두고 공무원 준비를 해라..
6년다닌 회사를 뒤로할때도.. 이제와서 나가서 뭐해먹고 살려고 그러냐..
무역 자격증 공부를 할때도.. 이제와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냐..
공부만 해서는 부자 못된다. 부자 되는 공부를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빠 말이 맞았을 수도 있다.
딴 자격증들 다 소용 없었으니까.
근데 후회는 덜할 수 있었다.
내가 선택했고, 도전했고, 공부로 성취해봤는데 결국 직업으로 갖는건 실패했으니까..
가봤으니까.. 그걸로 됐다.
그래서 이번 말도.. 뭐.. 나 걱정해서 그런 말씀 하시는건 알겠는데.. 그냥 흘러 넘기기로 했다.
상처 받는건 의미가 없다. 상대방이 상처받으라는 의도로 한 말도 아닌데.. 나 혼자 상처받으면 나만 손해다.

나한테는 어차피 이젠 뭐가 별로 없다.
오랜시간 투자했던 공부도.. 결국 성공적으로 끝난건 아니라서 이젠 예전에 친했던 다른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도 쪽팔리고..
페이가 많아서 내가 원하는걸 척척 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아니고..
지금 하는 일은 내 꿈과는 거리가 멀어서.. 그냥 감사하게만 다닐 뿐.. 이제는 일을 내 몸 갈아가며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엔 너무 이때까지 실망을 많이 했고 지쳤다.
남친이 있어서 내가 어느날 갑자기 새 가정을 꾸려서 애를 놓을 것도 아니고..
그냥.. 인생은 혼자인거지..

그래서 나는 아직 꿈을 계속 꾸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올 9월까지는 회계 공부를 해야겠지만…. (아직 53강 중에 18강까지 밖에 못봤다 ㅠ)
다시 NCS 준비하고.. 1년치 연구소 보고서들 조사해야지..
그래서 내년에는 또 다른 도시에서 일하고야 말 것이다.

실패할 확률은 높다. 또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해야 한다.
근데 내년까진 그래보려고…
아직 토익점수가 살아있다.

20대 때 내 꿈을 위해서 끝까지 달리지 않은 대가가 이거니까..
나는 성공이든 실패든 끝까지 해보고 결판을 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번에 이걸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유야무야 시간을 허투루 쓴다면..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후회하겠지.

'못다한 이야기 > 오늘도 하루를 산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년 11월의 단상  (2) 2021.11.29
이번 달 까지의 이야기  (1) 2021.10.16
지난 2년 반 동안의 이야기  (8) 2021.06.30
오늘의 일기  (2) 2021.06.15
이번 달까지의 이야기  (2) 2021.05.17
Posted by 지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