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에서 밥을 같이 먹자는 연락이 왔다.
나는 거절했다. 나는 역시 나쁜 딸년이다.

최근 일주일간 장염때문에 배가 아팠다.
뭘 제대로 먹을수조차 없어서 퇴근하면 바로 잠들기 바빴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기분이다.
금요일 저녁 7시에 자고 토요일 낮 12시에 일어났다.
배는 뭘 먹으려 하면 꾸물꾸물하며 아파올듯 말듯 한다.

회사에선 혼자있고싶다. 요즘은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숨이 막히는 기분이다.

올 2월 초, 윗분들이 뒤에서 굳이 내 자리에 사람이 필요하냐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내가 더 많은 일을 해줬으면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내 직급은 정규직이 아닌데.. 그치만 나는 내 직급보다 더 많은걸 하려고 스스로를 희생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다른 상사한테 공공연하게 들을 정도로 열심히 해왔는데..
나는 도대체 뭐지?

너무 쪽팔려서 블로그에 쓰고 싶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듣고 여러차례 다른데로 가려고 시도했지만 빈번히 실패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는 그냥 내가 너무 쓰레기같고 무기력해졌다.

이정도면 진짜 내가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엊그제 회사에서 왜 일본을 안가는데 일어를 배웠냐는 질문을 들었다.
나는 취직을 위해서라 답했다.
취직을 위해서라면 더 잘해야 하는거 아니냐, 그걸로 돈을 벌기는 어렵지 않냐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일본어가 메인이 아니고 다른거에 대한 서브이기 때문이라 말했다.
그치만 생각해보면.. 나는 다른 것들도 메인급으로 잘하진 못하는것만 같아.
그래서 나는 햇빛조차 잘 안드는 북향 원룸에서 이렇게 눅눅한 냄새나 풍기면서 살아가고 있는거겠지.


내가 첫 회사를 관둔지 벌써 햇수로 5년째..
그 비슷한 시기에 이직한 사람들은 어느덧 회사에서 자리잡고 주요한 인재가 된지도 5년째..
나는 만년 사무실 입구에서 앉아서 아등바등 한지 1년 9개월째..

혼자 있고 싶다.
가족도, 친구도, 회사도 다 필요없다.
그냥 누굴 상대할 여력이 없다.
살아남으려고 최선을 다해서 진심을 보여줘도 매번 배신만 당하는 나는..
과연 의미가 있는 삶인가 싶다.
나는 이 세상에서 어느날 갑자기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싶어.

아니 공부는 예체능이랑 다르게 굳이 상위 1%가 아니어도 먹고 산다며..
이게 뭐야..
나는 이제 한달에 200만원도 채 못 버는데..
나는 쓰레기야 진짜.

이제는 내 추한 모습을 감출만한 한 줌의 힘도 없다.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텐데
두번 다시 월요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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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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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달 20일동안 NCS 봉투모의고사를 몇권을 풀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만큼 간절했다. 작년 이후로 보는 첫 시험이라서.
그리고 회사 안에서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 이후로.. 나는 더욱 간절해졌다.
주중에 하루 3시간, 주말에 6시간~7시간을 내리 공부했다.
체력 안배를 잘못해서 시험 3일전에 결국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기도 하고..
시험을 봤는데 너무 처참했다.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영역에서 너무 처참하게 발려서 다른 영역은 보는것조차 못했다.

주말엔 집에서 고기를 사두었길래 고기와 맥주를 마셨다.
내 꼬라지가 너무 웃겼다.
나는 지난 4년동안 주말이면 항상 죄책감이 떠나질 않았다.
1년이 52주니까 최소 208번의 죄책감은 느꼈을터였다.
요즘은 평일 저녁에도 죄책감이 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결국 실패자다.
절망이 입 안의 사탕처럼 계속해서 데굴데굴 굴러가는 느낌이다.

인생.. 몇년이 지나도 새카맣기만 한 내 인생..
무능하기만 한 나..

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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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주인은 방문자가 어떤 내 글을 봤는지 알 수 있다.
그 글의 조회수가 올라가니까..
그 방문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제 조회된 글 중, 내가 10년도 더 전에 썼던 글의 조회수가 올라갔다는 걸 알게 됐다.
2010년의 나는 ‘내가 늦었구나’ 라고 생각했구나.. 싶었다.
근데 2023년을 사는 지금의 나도 ‘내가 늦었구나’ 라고 생각해 ㅋㅋ

2010년의 나도 힘들다고 생각했고,
2023년을 사는 지금의 나도 역시 힘들다고 생각해 ㅋㅋ

얼마 전에 본 2번의 토익 점수 결과가 나왔다.
첫 토익은 905점이었다.
두번째 토익은.. 첫 토익이 900점이 넘었다는걸 알고 있었고..
그 주에는 갑자기 소개팅이 잡혀서 부랴부랴 가느라 공부를 하나도 못했는데..
945점이 나왔다.

소개팅 때는 상대방 남자가 “900점은 넘길수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
아직 905점 조차 점수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서..
“글쎄요.. 나왔으면 좋겠네요 ㅎㅎ”라고 말했었는데..

그랬더니 상대방이 “그럼 850점을 넘기는거는요?” 라고 물었을 때,
“글쎄요.. 넘으면 좋겠는데 나올지 모르겠네요 ㅎㅎ”라고 웃어넘겼는데..

945점이라니..
난 역시 잘났어 ㅋㅋ

농담이고.. 어쨌든.. 예전부터 두려워했었고 갖고있었던 나만의 그릇된 명제를 이번에 하나 깼다.

내가 공기업 준비할때.. 미처 어딘가에 최종합격하지 못하고 토익점수가 만료됐을 때..
다시 토익을 봤을 때 토익 점수가 나오지 못하면 어떡하나.. 했던 그 명제.

그런 일이 일어날거라 생각도 못했는데 이번에 깨졌어.
인생은 역시 생각지도 못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실 최근의 내 현실은 더 녹록치 않아졌지만, 나는 지지 않을거야.
이 쯤되면 오기도 생기고 빡치니까.
나는 이제 해피엔딩을 맞아야만 하겠다.

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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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3년 1월 14일에는 토익 시험을 보러 만년중에 갔다.
작년 11월 중순부터 시작했던 산타토익 60일권의 만료를 하루이틀 앞두고 본 시험이었다.
전 날까지 팟7은 풀어보지도 못했고, 시험 전날에 또다시 연차를 내고 팟6만 5,6시간 내내 풀었다.
기존에는 LC와 팟5만 풀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6시간을 내리 푸니.. 어느덧 밤이 깊어서 팟7을 풀 수가 없었다.

산타토익은 언제 어디서나 앱으로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이패드에 펜으로 필기가 안되는 특징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앱으로 팟7을 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토익시험장에서 부랴부랴 ETS 1000제 RC책을 갖고가서 팟7의 복문을 열심히 풀었다.
그냥.. 어렸을때 가장 두려워했던 상황이었던..
‘공기업을 준비하다가 토익이 만료가 됐을때 어떡하지’를 실로 맞이한 순간이었다.

시험 직전에.. 모든 책을 다 가방에 넣고 창 밖을 멍하니 쳐다보는데..
내가 이번 시험에서 과연 900점을 넘길 수 있을까.. 라는 걱정과,
내가 첫 토익을 봤던게 2010년이었는데.. 12년동안 뭐하는 짓이지.. ㅋㅋ 라는 작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물론.. 그 중에 6년동안은 토익을 놔버렸던거지만..
2018년, 20년, 22년.. 최근 4,5년은 그래도 토익을 계속 보고 있으니..
이제는 창 밖을 보며.. ‘아.. 시험보는 것도 이제 좀 지치려고 그래.’라는 생각을 약간 했다.

토익에서 LC는 도중에 말이 빨랐던 구간이 있어서 한 10문항 정도는 잘 캐치를 못했던 것 같다.
예전엔 LC가 495점 나왔을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영어를 놓으니까 잘 안들리는 부분이 생기는구나.. 싶어서 좀 스스로가 답답해졌다.
내가 잘 못들어서 그렇지 그래도 스피커 음질은 괜찮았다.
문제를 풀다가 문득 교실의 스피커를 봤는데, 인터엠이라는 글자가 써있길래..
아.. 여기는 방송설비를 좋은 회사꺼를 쓰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속으로 혼자 웃었다.

RC는 의외로 5분의 시간이 남았는데..
팟7 공부를 제대로 안했던 터라.. 그냥 여기까지 한 걸로 만족하자란 생각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다다음주에 토익을 보기위해서 또 접수를 했건만, 진이 다 빠져서 또 시험보기는 어렵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이러면 안되는데.. 900점 넘겨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이제는 좀 지친 것 같아.



2.

그 다음날에는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그 때 시간대가 맞는 영화가 ‘영웅’밖에는 없어서, 그 영화를 봤다.
영웅 안중근의 고뇌와 마지막을 담은 영화였다.

영화의 첫 부분에서 많이 놀랐다.
안중근 의사의 군대가 일본군을 이겼는데, 전쟁포로를 죽이지 않고 풀어주신 일이었다.
결국 그 전쟁포로는 살아서 돌아갔고, 안중근 의사의 군대는 큰 인명피해를 입었다.

어쩐지.. 처음부터 불안불안 하더라니..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편으로는 저런 고귀한 성품을 가지신 분이니, 조국을 위해서 희생을 하실 수 있었던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세상에는 저렇게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들을 찾기 힘든걸까..
모든 사람들이 좋은 성품을 갖고 있다면.. 쓸데없이 전쟁을 할 필요도, 다른 사람을 해칠 필요도 없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영화의 엔딩 부근에는 조마리아 여사께서 안중근 의사께 보낸 편지의 내용이 나왔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새삼 놀라웠다.
좋은 성품의 부모님의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러한 성품을 가질 수 있었던 거겠지..

영화 엔딩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지금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하는 문구가 나왔다.
일본 제국주의의 잔인함에 치가 떨렸다.
그치만 하늘에서 광복된 조선을 보시고 조금이라도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후손들이 잘 살고 있다고..
독립운동가 분들께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목요일에는 소개팅을 했다.
회사에서 잡아주신 너무나도 갑작스런 소개팅이었다.
주선자께서 제발 렌즈를 끼고 나가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평소에 잘 끼지도 않는 렌즈를 끼고 나갔다.

학부 때 받아봤던 소개팅 이후로, 두번째로 받아본 소개팅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때도 동갑, 이번에도 동갑이었다.
소개팅을 해본 적이 없어서 어쩌나.. 싶었는데.. 주선자께서 따로 전화를 주셔서..
상대방도 별로 경험이 없으니, 그냥 친구 만난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만나라는 말씀을 하셨다.

한 카페에서 평소에 잘 마시지도 않는 요거트 스무디를 시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멀리서 상대방이 걸어왔다.
훈훈한 호남형 외모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지신 분이었다.

와.. 너무 긴장해서 스무디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포켓몬고 게임 얘기가 나왔다.
2년 전까지 취미생활로 틈틈이 했던 생각나면서 너무 반가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신나서 포켓몬고 이야기만 하고 왔다…… ㅠ
아마 소개팅에서 게임 얘기만 하는 여자는 나밖에 없을거야.. ㅋㅋ

그래서 결론은.. 잘 안됐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간만에 옛날 취미가 다시 생각나서 좋았다.
오랜만에 포켓몬고 앱을 다시 깔고 다시 게임을 했다.

마지막으로 접속했던게 2021년 2월이었다.
아.. 그 때 21년도에 갑자기 공부를 그만두기 시작하면서 안하게 됐구나..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오랜만에 접속했던 게임은 2년동안 참 많은게 바뀌었고 어색했지만,
그래도 재밌었다. ㅎㅎ

나.. 왠지 취미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



4.

이렇게 정신없는 한 주를 보내고, 어제부터는 설날 연휴를 맞이해서 부모님 집에서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간만에 한전 모고용 NCS도 다시 풀고.. 이제는 경영학 문제집도 좀 풀어봤다.
경제.. 어려웠는데 상경통합 준비하려면 다시 해야겠지..
회계도.. 상경통합 준비하려면 해야겠지..
행정도.. 법도..


토익스피킹은 올해 2월이 지나면 만료가 된다.
19년 8월에 에듀콘 수강하고 나서 Lv.7 나왔었는데.. 그때는 170점이었고..
21년 2월에 다시 시험을 쳤을 때도 Lv.7 나왔었는데.. 그때는 나름대로 혼자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160점 컷트라인에 걸렸었다.

그치만 토스는 다시 하려니.. 이제는 포맷에 맞춰서 달달 외워서 하기가 너무 지치고..
오픽은 한번도 쳐본 적이 없고..
나는 영어회화를 안한 지 너무 오래됐고..

그래.. 아직 끝난건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어디까지 힘을 낼 수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
성패는 둘째치고, 나는 내가 납득할 만한 결과를 얻기 위해 다시 최선을 다할거야.

뭐.. 어쩌면 이제 연애나 결혼을 못하게 될 수도 있지만..
모르겠다.. 또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 하지 말라고, 그만하라고 나를 말리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다만, 인생은 원래 한 치 앞도 모르는거니.. 나는 지금 주어진거에 다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역시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내가 하는 선택들이 모여서,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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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나한테 있어서는 35번째 새해이다.

내가 예전 회사를 그만둔지도 어느덧 햇수로 5년째가 되었고,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때부터 어느덧 1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5년동안 작은 성공과 큰 실패를 많이 겪어왔다고 생각한다.
회사 사정과 일이 적성에 안맞아서 6년동안 다닌 회사를 뒤로했던 일..
1년동안 무역자격증과 영어를 더 잘해보겠다고 고군분투하면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력서를 넣고 면접봤던 일..
2020년, 새로 이직했던 회사에서 코로나 때문에 TO가 줄었다며 나가게 된 일,
그 뒤에 20살 때부터 그렇게 가고싶었던 공기업 가겠다고 경제, NCS, 한국사를 처음 배웠던 일,
결국 토익이 900점을 넘지 못해서 aT에 서류조차 합격도 못했던 일,
그래서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900점을 어떻게든 넘겼는데 엄마의 병환으로 공부를 그만두고 하루 빨리 취업으로 전환했어야 했던 일,
어떻게 운좋게 들어간 회사에서 최저시급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지만.. 내 권한에 비해 다양하고 많은 업무를 맡게 되어서 여러 날을 야근해가며 고군분투했던 일,
그 와중에 1년밖에 안남은 토익 만료 기간을 보고.. 이제 정말 내 인생으로 마지막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그토록 꿈꾸고 간절히 근무하길 바랐던 KOTRA에 도전했던 일,
시험도 붙고 면접도 붙고 드디어 되나 싶었는데.. 결국 최종면접에서 미끄러져서 주말에 혼자 빈 방에서 나도 울고.. 결로때문에 집 천장도 울었던 일,
그리고 12월 20일부로 토익 만료… ㅎ

어찌보면 24살에 공기업을 생각하며 우려했던 가장 최악의 상황을, 35살의 내가 앞두고 있다.
그 때의 나는, 많은 자신이 없었다.
꿈의 기업은 애초부터 내 실력으로는 안될거라 생각했다.
다른 공기업 역시, 매번 벼락치기만 하는 나한테는 과분할거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막 전공에서 NCS로 넘어가던 시기였는데, 나는 똑똑하지 않아서 NCS도 잘 못풀거라고 생각했다.
한국사 자격증은 또 언제 따냐며 한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공공부를 계속한다고 해도, 토익이 만료가 됐을 때 다시 또 토익점수를 만들 수 있을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을 겪었고, 지난 5년동안은 내가 번 돈보다 쓴 돈이 더 많을 지경이었다.
그 5년동안 생계는 나아지지 않았고 나는 항상 외롭고 배고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들었던 국내여행, 뮤지컬,연극 등의 관람, 맛집탐방 등의 취미는 못한 지 꽤 오래였다.
남들이 월급을 모아서 해외여행을 가고, 명품을 살 때, 그건 내게 감히 언감생심, 꿈도 못꾸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20대 초에 학부에서 경영을 배우면서 그토록 가고 싶었던 인사분야로 결국 취직을 못했을 때도..
20대 내내 영어와 일본어를 어떻게든 배우겠다고 퇴근 후의 시간을 쪼갰고..
30대 초에 무역자격증을 취득하고 고군분투 했는데도 결국 무역 관련해서 커리어를 시작하지 못했을 때도..
나는 수많은 시간을 좌절했다.

30대 초에는 일종의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다.
20대 중반의 갓 졸업했던 나보다는 더 많이 준비했다는 자신감도 있었지만.. 현실에서 번번이 좌절하게 되면서.. 깊은 괴로움을 느꼈다.

공기업을 준비하는 30대 중반의 나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실패를 여러차례 겪게 되면, 어느 순간 스스로가 부족하고 못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앞으로의 시간이 지나도, 이 갑갑한 현실이 절대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못난 생각이 든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한편으로는.. 도전할만큼 도전해서 후회가 별로 없다.
만약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면.. 오랜 꿈은 계속 내 마음 한 구석을 찔렀을 것이다.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도 마찬가지였겠지.

근데.. 이제는 후회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당장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의외로 속이 후련했다.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고, 불확실하고, 두렵다.
2023년의 이번 정부의 기조는 공공기관의 인원 축소이다.
무기계약직의 자연감소분부터 더 TO를 채우지 않겠다고 했고, 신규 채용도 대폭 줄인다고 했다.
그럼 가장 먼저 모가지가 날아갈까 두려운 사람은 나다.
내가 바로 그 직급이니까.

나아지지 않는 통장잔고도 또다른 위협이다.
1년 반동안 나의 생계는 나아지지 않았고, 이 자리에 있으면 물가상승률 대비 나는 해마다 더 월급이 줄어들 것이다.

업무를 하는데 권한이 부족한 것도 위험요소이다.
권한 밖의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외부에서 봤을 땐 티가 하나도 안난다는 뜻이니까..
아무리 같은 부서원들이 일 잘한다고 나를 인정해주면 뭘해.. 부서 밖에서는 티가 안난다.
나는 그래봤자 무기계약직, 김그래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었다.
앞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사실 지금은 없다.
근데 내 인생이 실패로 점철된다고 해도, 내가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에 내 과거를 돌아봤을 때,
‘실패할까봐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보다는 ‘비록 실패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시도는 했다’라는걸 선택하고 싶다.


사실 이 나이쯤 되면, 주변에서 많이들 만류한다.
결혼하려면 연애해야지, 언제까지 니가 젊을 줄 아냐,
무기계약직이라도 만족하면서 그냥 저냥 욕심을 내려놓고 설렁설렁 일하고 작은 월급에 만족해라,
나이들어서 공부한다고 하면.. 아직까지 공부하냐..
일이랑 병행하려고 치면, 야근을 하거나, 일에 너무 기운을 뺏기면 공부할 여력도 없다.
체력은 또 개똥이지..

차라리 공부할 때 응원이라도 잔뜩 받았던 고3 시절이 이제는 좀 그리워질랑 말랑할 지경이지만..
차라리 24살, 25살, 26살에 조금 더 힘내서 공부로 조지고 빨리 공기업을 들어가는게 최선이지 않았나 싶지만..
지나간 과거는 어차피 돌아갈 수 없고, 나는 오늘을, 내일을 살아볼 예정이다.


나는 또 매일 실패와 성공을 할 작정이다.
다시금 오늘의 공부시간을 못채웠다고 우울해할테지,
또 어떤 날엔 역시 올해부터 공기업 TO가 줄었구나 체감하며 절망할거다.
그리고 또 어떤 날엔 필기나 서류에서 또 떨어져서 낙담을 할거다.

하지만 올해의 목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익을 900점을 다시금 넘고, NCS를 다시 하고..
전공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필기를 더 많이 붙겠다.
그리하여 면접도 가고.. 이직을 할 예정이다.

만약 올해 끝내 이직에 실패한다면..
결국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 자리에 만족하기로 했다.

내가 스무살부터 지금까지 15년동안 배운거라곤,
최대한 후회를 적게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 뿐이었으니까.
그냥.. 그 ‘경험’이 내가 젊을 때 샀던 대부분의 것이었다.
나는 돈이 없잖아.. 그럼 나에게 주어진 한도 내에서 경험이라도 사야지.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도전을 해도 참 많은걸 걸어야 한다.
도전을 해도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는건 20대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지만,
그 한 해, 한 해가, 20대의 1년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근데, 그래도 할래.
나는 역시, 한 곳에 계속 안주하고 싶지도 않고, 후회같은 건 되도록 하고싶지 않다.


설령 내 도전이 안좋게 끝난다고 해도,
어느 날 내 블로그에 우연히 본 누군가한테는,
2010~20년대를 살아간 한 젊은이의 고군분투기로 보여지겠지..
누군가의 반면교사가 된다면 그걸로 됐다.

나는 김지인이다.

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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