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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2.02 2023년 1월에 대한 늦은 단상
  2. 2023.01.07 2023년 새해에 대한 소회 4
  3. 2022.12.31 2022년 12월의 마지막 밤
  4. 2022.11.26 그냥저냥 살고 있다. 7
  5. 2022.11.02 2022년 11월 초의 단상 2


1.

2023년 1월 14일에는 토익 시험을 보러 만년중에 갔다.
작년 11월 중순부터 시작했던 산타토익 60일권의 만료를 하루이틀 앞두고 본 시험이었다.
전 날까지 팟7은 풀어보지도 못했고, 시험 전날에 또다시 연차를 내고 팟6만 5,6시간 내내 풀었다.
기존에는 LC와 팟5만 풀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6시간을 내리 푸니.. 어느덧 밤이 깊어서 팟7을 풀 수가 없었다.

산타토익은 언제 어디서나 앱으로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이패드에 펜으로 필기가 안되는 특징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앱으로 팟7을 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토익시험장에서 부랴부랴 ETS 1000제 RC책을 갖고가서 팟7의 복문을 열심히 풀었다.
그냥.. 어렸을때 가장 두려워했던 상황이었던..
‘공기업을 준비하다가 토익이 만료가 됐을때 어떡하지’를 실로 맞이한 순간이었다.

시험 직전에.. 모든 책을 다 가방에 넣고 창 밖을 멍하니 쳐다보는데..
내가 이번 시험에서 과연 900점을 넘길 수 있을까.. 라는 걱정과,
내가 첫 토익을 봤던게 2010년이었는데.. 12년동안 뭐하는 짓이지.. ㅋㅋ 라는 작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물론.. 그 중에 6년동안은 토익을 놔버렸던거지만..
2018년, 20년, 22년.. 최근 4,5년은 그래도 토익을 계속 보고 있으니..
이제는 창 밖을 보며.. ‘아.. 시험보는 것도 이제 좀 지치려고 그래.’라는 생각을 약간 했다.

토익에서 LC는 도중에 말이 빨랐던 구간이 있어서 한 10문항 정도는 잘 캐치를 못했던 것 같다.
예전엔 LC가 495점 나왔을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영어를 놓으니까 잘 안들리는 부분이 생기는구나.. 싶어서 좀 스스로가 답답해졌다.
내가 잘 못들어서 그렇지 그래도 스피커 음질은 괜찮았다.
문제를 풀다가 문득 교실의 스피커를 봤는데, 인터엠이라는 글자가 써있길래..
아.. 여기는 방송설비를 좋은 회사꺼를 쓰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속으로 혼자 웃었다.

RC는 의외로 5분의 시간이 남았는데..
팟7 공부를 제대로 안했던 터라.. 그냥 여기까지 한 걸로 만족하자란 생각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다다음주에 토익을 보기위해서 또 접수를 했건만, 진이 다 빠져서 또 시험보기는 어렵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이러면 안되는데.. 900점 넘겨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이제는 좀 지친 것 같아.



2.

그 다음날에는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그 때 시간대가 맞는 영화가 ‘영웅’밖에는 없어서, 그 영화를 봤다.
영웅 안중근의 고뇌와 마지막을 담은 영화였다.

영화의 첫 부분에서 많이 놀랐다.
안중근 의사의 군대가 일본군을 이겼는데, 전쟁포로를 죽이지 않고 풀어주신 일이었다.
결국 그 전쟁포로는 살아서 돌아갔고, 안중근 의사의 군대는 큰 인명피해를 입었다.

어쩐지.. 처음부터 불안불안 하더라니..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편으로는 저런 고귀한 성품을 가지신 분이니, 조국을 위해서 희생을 하실 수 있었던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세상에는 저렇게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들을 찾기 힘든걸까..
모든 사람들이 좋은 성품을 갖고 있다면.. 쓸데없이 전쟁을 할 필요도, 다른 사람을 해칠 필요도 없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영화의 엔딩 부근에는 조마리아 여사께서 안중근 의사께 보낸 편지의 내용이 나왔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새삼 놀라웠다.
좋은 성품의 부모님의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러한 성품을 가질 수 있었던 거겠지..

영화 엔딩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지금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하는 문구가 나왔다.
일본 제국주의의 잔인함에 치가 떨렸다.
그치만 하늘에서 광복된 조선을 보시고 조금이라도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후손들이 잘 살고 있다고..
독립운동가 분들께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목요일에는 소개팅을 했다.
회사에서 잡아주신 너무나도 갑작스런 소개팅이었다.
주선자께서 제발 렌즈를 끼고 나가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평소에 잘 끼지도 않는 렌즈를 끼고 나갔다.

학부 때 받아봤던 소개팅 이후로, 두번째로 받아본 소개팅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때도 동갑, 이번에도 동갑이었다.
소개팅을 해본 적이 없어서 어쩌나.. 싶었는데.. 주선자께서 따로 전화를 주셔서..
상대방도 별로 경험이 없으니, 그냥 친구 만난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만나라는 말씀을 하셨다.

한 카페에서 평소에 잘 마시지도 않는 요거트 스무디를 시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멀리서 상대방이 걸어왔다.
훈훈한 호남형 외모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지신 분이었다.

와.. 너무 긴장해서 스무디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포켓몬고 게임 얘기가 나왔다.
2년 전까지 취미생활로 틈틈이 했던 생각나면서 너무 반가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신나서 포켓몬고 이야기만 하고 왔다…… ㅠ
아마 소개팅에서 게임 얘기만 하는 여자는 나밖에 없을거야.. ㅋㅋ

그래서 결론은.. 잘 안됐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간만에 옛날 취미가 다시 생각나서 좋았다.
오랜만에 포켓몬고 앱을 다시 깔고 다시 게임을 했다.

마지막으로 접속했던게 2021년 2월이었다.
아.. 그 때 21년도에 갑자기 공부를 그만두기 시작하면서 안하게 됐구나..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오랜만에 접속했던 게임은 2년동안 참 많은게 바뀌었고 어색했지만,
그래도 재밌었다. ㅎㅎ

나.. 왠지 취미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



4.

이렇게 정신없는 한 주를 보내고, 어제부터는 설날 연휴를 맞이해서 부모님 집에서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간만에 한전 모고용 NCS도 다시 풀고.. 이제는 경영학 문제집도 좀 풀어봤다.
경제.. 어려웠는데 상경통합 준비하려면 다시 해야겠지..
회계도.. 상경통합 준비하려면 해야겠지..
행정도.. 법도..


토익스피킹은 올해 2월이 지나면 만료가 된다.
19년 8월에 에듀콘 수강하고 나서 Lv.7 나왔었는데.. 그때는 170점이었고..
21년 2월에 다시 시험을 쳤을 때도 Lv.7 나왔었는데.. 그때는 나름대로 혼자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160점 컷트라인에 걸렸었다.

그치만 토스는 다시 하려니.. 이제는 포맷에 맞춰서 달달 외워서 하기가 너무 지치고..
오픽은 한번도 쳐본 적이 없고..
나는 영어회화를 안한 지 너무 오래됐고..

그래.. 아직 끝난건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어디까지 힘을 낼 수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
성패는 둘째치고, 나는 내가 납득할 만한 결과를 얻기 위해 다시 최선을 다할거야.

뭐.. 어쩌면 이제 연애나 결혼을 못하게 될 수도 있지만..
모르겠다.. 또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 하지 말라고, 그만하라고 나를 말리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다만, 인생은 원래 한 치 앞도 모르는거니.. 나는 지금 주어진거에 다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역시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내가 하는 선택들이 모여서,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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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나한테 있어서는 35번째 새해이다.

내가 예전 회사를 그만둔지도 어느덧 햇수로 5년째가 되었고,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때부터 어느덧 1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5년동안 작은 성공과 큰 실패를 많이 겪어왔다고 생각한다.
회사 사정과 일이 적성에 안맞아서 6년동안 다닌 회사를 뒤로했던 일..
1년동안 무역자격증과 영어를 더 잘해보겠다고 고군분투하면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력서를 넣고 면접봤던 일..
2020년, 새로 이직했던 회사에서 코로나 때문에 TO가 줄었다며 나가게 된 일,
그 뒤에 20살 때부터 그렇게 가고싶었던 공기업 가겠다고 경제, NCS, 한국사를 처음 배웠던 일,
결국 토익이 900점을 넘지 못해서 aT에 서류조차 합격도 못했던 일,
그래서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900점을 어떻게든 넘겼는데 엄마의 병환으로 공부를 그만두고 하루 빨리 취업으로 전환했어야 했던 일,
어떻게 운좋게 들어간 회사에서 최저시급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지만.. 내 권한에 비해 다양하고 많은 업무를 맡게 되어서 여러 날을 야근해가며 고군분투했던 일,
그 와중에 1년밖에 안남은 토익 만료 기간을 보고.. 이제 정말 내 인생으로 마지막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그토록 꿈꾸고 간절히 근무하길 바랐던 KOTRA에 도전했던 일,
시험도 붙고 면접도 붙고 드디어 되나 싶었는데.. 결국 최종면접에서 미끄러져서 주말에 혼자 빈 방에서 나도 울고.. 결로때문에 집 천장도 울었던 일,
그리고 12월 20일부로 토익 만료… ㅎ

어찌보면 24살에 공기업을 생각하며 우려했던 가장 최악의 상황을, 35살의 내가 앞두고 있다.
그 때의 나는, 많은 자신이 없었다.
꿈의 기업은 애초부터 내 실력으로는 안될거라 생각했다.
다른 공기업 역시, 매번 벼락치기만 하는 나한테는 과분할거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막 전공에서 NCS로 넘어가던 시기였는데, 나는 똑똑하지 않아서 NCS도 잘 못풀거라고 생각했다.
한국사 자격증은 또 언제 따냐며 한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공공부를 계속한다고 해도, 토익이 만료가 됐을 때 다시 또 토익점수를 만들 수 있을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을 겪었고, 지난 5년동안은 내가 번 돈보다 쓴 돈이 더 많을 지경이었다.
그 5년동안 생계는 나아지지 않았고 나는 항상 외롭고 배고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들었던 국내여행, 뮤지컬,연극 등의 관람, 맛집탐방 등의 취미는 못한 지 꽤 오래였다.
남들이 월급을 모아서 해외여행을 가고, 명품을 살 때, 그건 내게 감히 언감생심, 꿈도 못꾸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20대 초에 학부에서 경영을 배우면서 그토록 가고 싶었던 인사분야로 결국 취직을 못했을 때도..
20대 내내 영어와 일본어를 어떻게든 배우겠다고 퇴근 후의 시간을 쪼갰고..
30대 초에 무역자격증을 취득하고 고군분투 했는데도 결국 무역 관련해서 커리어를 시작하지 못했을 때도..
나는 수많은 시간을 좌절했다.

30대 초에는 일종의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다.
20대 중반의 갓 졸업했던 나보다는 더 많이 준비했다는 자신감도 있었지만.. 현실에서 번번이 좌절하게 되면서.. 깊은 괴로움을 느꼈다.

공기업을 준비하는 30대 중반의 나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실패를 여러차례 겪게 되면, 어느 순간 스스로가 부족하고 못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앞으로의 시간이 지나도, 이 갑갑한 현실이 절대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못난 생각이 든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한편으로는.. 도전할만큼 도전해서 후회가 별로 없다.
만약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면.. 오랜 꿈은 계속 내 마음 한 구석을 찔렀을 것이다.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도 마찬가지였겠지.

근데.. 이제는 후회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당장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의외로 속이 후련했다.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고, 불확실하고, 두렵다.
2023년의 이번 정부의 기조는 공공기관의 인원 축소이다.
무기계약직의 자연감소분부터 더 TO를 채우지 않겠다고 했고, 신규 채용도 대폭 줄인다고 했다.
그럼 가장 먼저 모가지가 날아갈까 두려운 사람은 나다.
내가 바로 그 직급이니까.

나아지지 않는 통장잔고도 또다른 위협이다.
1년 반동안 나의 생계는 나아지지 않았고, 이 자리에 있으면 물가상승률 대비 나는 해마다 더 월급이 줄어들 것이다.

업무를 하는데 권한이 부족한 것도 위험요소이다.
권한 밖의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외부에서 봤을 땐 티가 하나도 안난다는 뜻이니까..
아무리 같은 부서원들이 일 잘한다고 나를 인정해주면 뭘해.. 부서 밖에서는 티가 안난다.
나는 그래봤자 무기계약직, 김그래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었다.
앞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사실 지금은 없다.
근데 내 인생이 실패로 점철된다고 해도, 내가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에 내 과거를 돌아봤을 때,
‘실패할까봐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보다는 ‘비록 실패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시도는 했다’라는걸 선택하고 싶다.


사실 이 나이쯤 되면, 주변에서 많이들 만류한다.
결혼하려면 연애해야지, 언제까지 니가 젊을 줄 아냐,
무기계약직이라도 만족하면서 그냥 저냥 욕심을 내려놓고 설렁설렁 일하고 작은 월급에 만족해라,
나이들어서 공부한다고 하면.. 아직까지 공부하냐..
일이랑 병행하려고 치면, 야근을 하거나, 일에 너무 기운을 뺏기면 공부할 여력도 없다.
체력은 또 개똥이지..

차라리 공부할 때 응원이라도 잔뜩 받았던 고3 시절이 이제는 좀 그리워질랑 말랑할 지경이지만..
차라리 24살, 25살, 26살에 조금 더 힘내서 공부로 조지고 빨리 공기업을 들어가는게 최선이지 않았나 싶지만..
지나간 과거는 어차피 돌아갈 수 없고, 나는 오늘을, 내일을 살아볼 예정이다.


나는 또 매일 실패와 성공을 할 작정이다.
다시금 오늘의 공부시간을 못채웠다고 우울해할테지,
또 어떤 날엔 역시 올해부터 공기업 TO가 줄었구나 체감하며 절망할거다.
그리고 또 어떤 날엔 필기나 서류에서 또 떨어져서 낙담을 할거다.

하지만 올해의 목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익을 900점을 다시금 넘고, NCS를 다시 하고..
전공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필기를 더 많이 붙겠다.
그리하여 면접도 가고.. 이직을 할 예정이다.

만약 올해 끝내 이직에 실패한다면..
결국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 자리에 만족하기로 했다.

내가 스무살부터 지금까지 15년동안 배운거라곤,
최대한 후회를 적게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 뿐이었으니까.
그냥.. 그 ‘경험’이 내가 젊을 때 샀던 대부분의 것이었다.
나는 돈이 없잖아.. 그럼 나에게 주어진 한도 내에서 경험이라도 사야지.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도전을 해도 참 많은걸 걸어야 한다.
도전을 해도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는건 20대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지만,
그 한 해, 한 해가, 20대의 1년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근데, 그래도 할래.
나는 역시, 한 곳에 계속 안주하고 싶지도 않고, 후회같은 건 되도록 하고싶지 않다.


설령 내 도전이 안좋게 끝난다고 해도,
어느 날 내 블로그에 우연히 본 누군가한테는,
2010~20년대를 살아간 한 젊은이의 고군분투기로 보여지겠지..
누군가의 반면교사가 된다면 그걸로 됐다.

나는 김지인이다.

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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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말부터 12월에는 바빴다.

11월 말,
노조의 요청으로 교대 근무자의 근무가 일부 변경됐다.
그 건으로 우리 팀의 상사들과 일주일 넘게 고심하면서, 우리 부서에 맞도록 근무 스케쥴을 변형하는 아이디어를 짜느라 고생했다.
총무팀을 통해 노조에 전달하면서..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고.. 잘 부탁드린다고 말을 전했다.



12월 초부터 중순까지는 갑자기 부서 송년회 준비를 해야 했다.
처음으로 준비해보는 송년회.
어떤 음식을 얼마나 준비할지, 어떤 선물을 하고 이벤트를 할지 모든 것이 막막했다.
심지어 영상도 만들었어야 했고..

그렇지만 많은 사람의 도움 덕분으로 해내게 됐다.
영상을 일주일동안 찍고, 막판에 12시 반까지 편집하느라 힘들었지만..
영상이 PC에 안옮겨져서 당일 이벤트 1시간 전에 부랴부랴 유튜브에 고화질로 업로드하는것도 힘들었지만..
이벤트 전날에 대설주의보라서 눈이 펑펑 오는데.. 그 눈을 뚫고 선물을 사느라 너무 힘들었지만..
이벤트 상품과 영상을 준비하느라 정작 발표준비를 하나도 하지 못해서.. ‘아.. 진짜 이번 발표 개망했다..’ 라며 절망적이었지만..
그래도 진심은 통했는지.. 당일에 다들 즐거워해주시는 모습들을 보니 너무 뿌듯했고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날에는.. 회사에 아세안 국가들의 각 정부 귀빈들이 오셔서 회사 투어를 했다.
팀장님의 요청으로 보조로 들어가게 되었다.
기존에 타기업에서는 딜러만 보다가.. 장,차관급이나 어느 회사의 대표분들을 포함해서 스무명씩 오시는데..
갑자기 의전에 투입되어서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게 생소했다.
어차피 동시통역사가 있었던 상태였고..
나는 이제 영어를 안한지 너무 오래됐고.. 코트라 결과에서도 스피킹 점수가 그닥 좋지 않았던 편이었어서..
나 혼자 괜히 의기소침해하면서.. 2시간동안 그냥 영어로 간단한 안내만 해드리고 에스코트만 해드렸다.
그 에스코트를 하느라, 귀빈들보다 몇발짝씩 앞서서 뛰어다니는 바람에 땀이 좀 많이 나긴 했지만.. 뭐.. ㅎ

한 사람만 전담마크하면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것과.. 수십명의 사람들이 가끔식 하는 이야기를 듣고 맥락을 파악하는건 좀 다른 문제구나.. 싶었다.
그치만 회계팀의 누군가는 진짜 잘하시던데.. 나 진짜 이제는 영어를 잘 못하는구나.. 싶어서 조금은 괴로운 하루였다.

그치만 투어가 다 끝날 무렵, 그 분들중에 한 분께서 나한테 감사하다고 해주셨는데..
그 별 것도 아닌 그 작은 한 마디가 위로가 됐다.



그 다음주의 12월 말의 언젠가에는 팀장님의 요청으로 경영에 대한 강의를 준비해야 했다.
학부를 졸업한게 10년이 넘었고.. 졸업 후에는 CS로만 근무했었고.. 지금은 제가 인사팀도 아닌데 이걸 하는게 자신이 없다.. 라고 말씀드렸지만..
본인들께선 해당 전공이 아니니, 전공이었던 자네가 해보는게 좋겠다고 하셨다.

부랴부랴 발표 전 날에 인터넷에서 경영전략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가며 자료를 준비했다.
차별화 전략과 원가 우위 전략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 회사의 3년치 재무상태표를 보면서 분석도 해봤다.
역시.. 졸업한지 오래됐는데 이게 될까 싶어서 ‘아.. 내일 또 개쪽 당하겠다..’ 싶었는데
그래도 당일에 다들 수고했다며 칭찬해주셨다.


2022년의 마지막 근무일에는, 갑자기 민원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월 마감을 해야 해서.. 근무자들 근무마감, 각종 부서 비용 마감들을 해야 하는데..
민원까지 받기에 너무 벅찼다. 그치만 해야지..
누군가는 그 빗발치는 민원을 받고 필드로 나가서 작업해야 하니까.. 작업을 원활하게 하려면 어쩔 수 없으니..
전화를 핸드폰으로 돌리고, 밖에서 업무처리하면서 민원을 받고 전달하느라 조금 많이 고생했고, 힘들었다.


그렇게 2022년이 끝나간다.
보통 때 같았으면, 한 해가 끝나가는게 섭섭하고.. 나이를 먹는 것 때문에 새해가 오는게 싫었을텐데..
이번엔 그냥 속이 후련했다.

그 말을 했더니.. 내 오랜 지인이,
혹시 ‘자포자기한 상태인게 아니냐’라는 말을 했다.

근데.. 자포자기라기보다는 그냥.. 속이 후련해..
나는 올해 초로 돌아가서 이 이상으로 잘 살 수 있겠냐고 물어보면.. 자신이 없다.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ㅎ
내 역량은 여기까지였던거고.. 다 쏟아냈으니..


연말이라고, 한 여자 상사가 롤링페이퍼 작성을 제안해서 작성을 하게 됐다.
롤링페이퍼에 어떤 글귀가 있을까.. 마치 평가 받는 것만 같아서 쳐다볼 용기조차 못내고 있다가..
집에 가져가서 몇 시간만에 찬찬히 읽어봤다.

상사분들이 써주셨던 글들 중, 기억나는 글귀가 있었는데..
인생은 원래 불확실하고 불안정한거니.. 매순간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말을 정규직 종사자에 들으니 조금은 아이러니했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당연했던.. 경영학에서는 ‘외부 환경은 불확실하다’ 라는 진리같은 그 말을.. 롤링페이퍼에서 다시 보게되니 기분이 이상했다.

30 중반에도 어디 하나 정착하지 못하고.. 뒤늦게 도전하겠답시고 계속 실패하는 바람에..
내 나이대의 사람들만큼조차 돈을 모으지도 못하고..
마치 물 위의 부표처럼.. 직급 차이 때문에 같은 회사 내에서도 뭔가 홀로 떠돌아다니는 것만 같은 나에게..
그 말이 묘한 위로가 됐다.

신은 공평해서 고생 끝에 낙이 올거라는 말도..
회사 그만두지 말라는 말도.. ㅎㅎ

다 그냥.. 조용한 위로가 됐다.


가끔은 회사 화장실 한 구석에서 쭈그려 앉아서.. 내 불안한 미래 때문에 숨죽여 울기도 했었는데..



2022년이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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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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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꿈의 대장정을 2주 전에 마무리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서울 양재의 본사 10층 대회의실에서 본 최종면접이었다.
전날까지 무슨 질문이 나올지 몰라서 기대와 걱정, 불안을 한가득 안고 올라간 면접장이었다.
이 자리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그치만 최종면접의 9명 사이에 끼어서,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다시 돌아보면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남들은 본인의 경험과 매칭해서 대기업 최종면접자들 마냥 잘도 말하던데..
나름 면접을 많이 봤다고 생각했음에도, 면접관에 의해 말이 자꾸 끊기는 시간들 속에서.. 초조하고 두려웠다.
면접장에서 면접에 대한 답변을 했어야 했는데, 자꾸 스스로에 대한 변명만을 답하게 되었던거 같다.

다른 면접자들 답변을 들으면서, 스스로가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영자신문을 쓴 경험이 있고, 누군가는 논문을 썼고..
누군가는 무역에 대한 경험이 있고..
누군가는 여러 해외경험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꾸만 스스로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잘 살지는 못했던것만 같아..
어쩌면 열심히 살지도 못했던 것만 같고..

보통 면접을 보면.. 잘 봤다는 예상은 빗나갈 때도 있었지만..
망했다는 예감은 어김없이 틀린 적이 없었다. 나는 그 날의 마지막 그룹이었기 때문에..
면접장을 나가는 길은 어느덧 컴컴해졌다.
다시는 이 근처에 올 일이 없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고, 면접 전에 긴장해서 음식 하나 삼키지 못했던 것들이, 그 회사 문을 나서자마자 엄청난 허기가 되어서 나를 덮쳤다.
그래서.. 나가는 길에 보이는 가장 첫 식당인 한 국밥집에 들어갔다.
가장 싼 국밥이 12,000원인걸 보고, 강남엔 국밥도 비싸네.. 싶었다.
밥을 먹는데 술 생각이 생각나서 맥주를 한병 시키고, 밥과 같이 먹었다.
면접을 말아먹었으니, 국밥도 말아먹어야겠다, 라는 생각이었다.
국 속의 고기와 소면을 꼭꼭 씹어먹고, 맥주를 한잔 들이켰다.

그때는 하루의 의지력이 다 바닥나 버려서, 혼잣말을 하면서 면접을 복기했다.
자책도 좀 했던거 같고..
이제는 다시 올 일이 없는, 국밥집 창가 너머로 보이는 많은 고층건물들과 도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눈 속에 넣기 바빴다.

그 사이, 나와 가까운 다른 테이블에서 누군가가 여러번 기침을 하기에, 설마.. 라는 불안함도 있었지만..
설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로부터 5일 뒤, 심한 감기몸살에 걸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기도 어려운데.. 회사에는 가야 하니.. 부랴부랴 나가게 됐다.
고열과 기침, 두통, 근육통 등 때문에 너무 괴로웠으나.. 코로나 자가 키트에는 음성으로 나와서 단순 감기몸살인가 했다.
다음날 연차를 쓰고.. 집에서 누워있는데.. 오후 4시까지 일어날 수가 없어서.. 이대로는 내일 출근이 어렵겠다 싶어서 간신히 근처 병원을 갔다.
코로나 양성이었다.
6일을 내리 앓았고, 통증이 거의 끝나는 마지막날에 최종결과가 나왔는데, 역시 내 예상을 한치도 빗나가지 않는 결과였다.
머리로는 이해가 됐으나, 마음은 괴로웠다.

지난 14년간의 오랜 꿈의 성적표였고, 지난 3년간의 노력의 결과였다.
풍운의 꿈을 안고 배웠던 영어, 일어 같은 외국어부터.. 무역, 경제, 그리고 내 전공이었던 경영까지..
그리고 부수적으로 배워야 했던 NCS와 한국사까지..
참으로 얼마나 다양한걸 제로베이스부터 어느정도 실력이 되기 위해 그토록 많은 날들을 지냈던가..

그 모든 것들의 성적표 앞에서.. 나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83점일 뿐이었다.
172명 중, 최종 6명에 들어가지 못하는 실력일 뿐이었고..
사실 단순히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꿈의 크기에 비해 내 능력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게 모든 사실의 전부였다.
회사는 감성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회사 일의 대부분은 이성과 수치로 내 능력치를 증명해야만 하는거니까..
나는 명백히 나를 객관적으로 입증시키지 못했던거다. 필요한 사람이라는 수치에 내가 맞지 않았던 것 뿐이다.
그냥.. 그 뿐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자취방 벽면에 물이 줄줄 새는걸 발견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회사에 다시 돌아갔다. 내 현실이 바뀌는건 없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내 현실과 미래가 바뀔수는 없을수는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덧 작은 절망이 내게로 성큼 다가왔다.
인생이 나한테 일주일 단위로 너무 다이나믹한 감정을 경험하게 해줘서, 조금 헛웃음이 났다.

이런 나에게 내 옛날 오랜 벗은, 문자로 큰 위로를 건넸다.
똑같은 경험과 실패를 해도, 그 후의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라고. 그 동안 수고했다고..
지금의 실패에 너무 오래, 깊게 좌절하지 말라고..

그대의 상냥함에 그러겠노라 대답했지만..
사실은 이제 잘 모르겠다. 나는 능력도 없는 주제에, 내 딴엔 너무 오랫동안 고군분투했고..
작은 몇 번의 성공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여러 큰 실패를 겪어오면서 마음도 많이 다쳐왔으니..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이다..
이젠 인생을 잘 모르겠다. 그냥 나는.. 잘 모르는 인생을 그냥저냥 살고 있다.
이런게 인생이고 행복이겠지.. 나는 행복하다.

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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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들 동안 ‘언젠가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며 의문섞인 바람을 수없이, 여러차례 꿈꿔왔었다.

카톡 프로필에 내가 감히 갖지도 못할 행복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질투나기 일쑤였다.

지금은… 그들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다는 안도감만 든다.

내일은 내 14년 간의 오랜 꿈이 모두 끝나는 날이다.
내일이 마침표가 될지, 새로운 시작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꿈을 품을 수 있어서 괴롭고 행복했다.

사랑은 괴롭고 힘든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는 일종의 내 오랜 짝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사람들이랑 씨름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저녁이 되고.. 내일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울렁거려.

왠지 조금은 울고 싶은 기분도 든다.


너무 오랜시간 사랑했다.
내 인생의 나침반 같았다.
외면하려해도 결국 마음 한 켠을 쿡쿡 찔렀다.

한 달 전의 나는.. 감히 내일이 올거라고 생각조차 못했다.
단 몇 시간 뒤의 내 미래도 모르는 나는.. 참 얼마나 나약하고 작고 보잘것이 없는가.

또 오해영에 나오는 오해영처럼..
나는 내가 진심으로 잘됐으면 좋겠다.

나는 결국 나를 사랑했고, 내 꿈을 사랑했으므로.

물음표를 던지지 말고, 느낌표를 던지자.
나는 잘할거야.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니까 한 치 앞도 모르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

Posted by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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